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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Sep 26. 2023

선물같던 엄마와의 시간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



엄마가 위 절제 수술을 했던 날은 그 해의 첫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구름이 짙게 껴 하늘에 회색 그림자가 졌던 기억이 납니다. 초겨울 시린 바람에 단풍이 스산히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서너 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예정보다 한참 길어졌습니다. 당초 간호사들이 안내했던 시간이 훌쩍 넘어가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오후 늦게야 의사로부터 보호자인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수술실로 오라고요. 아빠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난 후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일 분 일 초를 세었습니다.



몇십 분이 흘렀을까. 아빠가 흑빛이 된 얼굴로 A4용지 한 장을 쥐고 걸어 나왔습니다. 종이엔 엄마의 위와 폐 같은 장기가 그러져 있고 이곳저곳에 '절단'을 표시하는 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엄마 암이 그간 CT나 MRI 검사에선 보이지 않던 데 까지 뻗쳐 있답니다. 위암인데 횡격막까지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니, 보호자가 절제를 할지 말지 결정을 하라고 합니다.



"수술이 끝난 후 두 시간 안에 자력을 숨을 쉬지 못하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대. 이후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대."



그 말인즉, 겨우 두 시간이면 엄마가 살지 죽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금니를 악물고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어가던 아빠가 결국 눈물을 토해냈습니다. 저는 숨을 쉬고 있는데도 목이 죄는 것 같았습니다.



아.

세상에 엄마가 없을 수도 있다니.






두 시간을 도무지 병원 안에서 버틸 수 없었던 우리는 아산병원 옆을 따라 난 탄천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서요. 추운 날씨인데도 뺨을 따라 흐르는 눈물이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엄마가 믿던 신께 엄마를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단 한 번만 숨을 내뱉게 해 달라고요.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건, 이전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었습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엄마, 언제나 애틋한 엄마. 소녀같이 뽀오얀 엄마의 얼굴을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엄마랑 다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아쉬운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대로 엄마와의 생이 끝이라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깨어나면 연락을 준다던 병원에서는, 우리가 그 길고 긴 산책길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걷는 내내 오열하던 동생은 급기야 헛구역질이 나서는 샛길로 빠져나갔습니다. 아빠와 저는 길을 돌아 병원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병원에 가 닿기 전에  두 시간이 흘러가 버리지 않길 바랐습니다. 시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삼 년



'김** 님이 회복실로 이동 중입니다.'


병원 어귀에 이르렀을 때, 기적적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자력으로 숨을 쉬고 마취에서 깨어나 입원실로 이동한다는 문자였습니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독한 약냄새가 풍기는 싸늘한 병상에 핏기 없이 누워 있는 엄마가 보였습니다. 엄마는 속눈썹조차 들어 올리기가 무거운 듯 가늘게 눈을 뜨고서 우리를 얼굴을 보고 안심한 듯 눈을 감았습니다. 얼마나 피를 쏟아낸 것인지 짐작도 못할 만큼 파리해진 엄마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엄마 손을 꼭 붙잡고 하늘에 얼마나 감사를 올렸는지 모릅니다. '됐다. 엄마를 다시 만났으니 됐다, 그 만으로도 됐다'고요. 우리에게 두 시간도 허락지 않을 줄 알았더니 다만 얼마라도 엄마와 보낼 시간이 생겨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엄마와 밥 한 끼 더 먹고, 눈 한 번 더 마주치고, 손 한 번 더 잡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정말로 떠나야 할 때 인사라도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엄마와의 시간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었습니다. 엄마가 수술한 후 삼 년이었어요. 영원할 줄 알았던 것에 비하면 찰나와 같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게 오 년이든, 십 년이든, 오십 년이든, 아무리 길어도 영겁에 비하면 유한하고 짧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를 보내야만 합니다. 헤아려 보세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요. 특히나 멀리 떨어져 산다면 횟수만 세어도 백 번이 채 되지 않을 겁니다. 삶이란 마지막을 향한 카운트다운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 삼 년, 우리 가족은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서로의 존재가 너무도 당연해 소홀할 때도 많았다면, 이젠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엄마가 마지막까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각자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 했습니다. 언제가 끝날 수명을 고통 속에 연장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보다도 삶의 마지막까지 엄마가 '우리가 있어 행복하다' 느끼길 바랐어요. 그게 우리가 선물로 받은 삼 년을 값지게 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한 엄마와의 마지막 산책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제 삶 자체가 엄마가 준 선물이었습니다. 아빠와의 시간, 동생과의 시간, 남편과의 시간, 아이와의 시간, 다 선물이었어요.



엄마 수술 이후 저는 매일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요. 끝이란 결국 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 삶의 끝에, '나는 진실로 이 삶을 사랑했다'고 느끼고 싶습니다.



그게 엄마가 제게 깨우쳐 준 마지막 삶의 지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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