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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Sep 27. 2023

엄마를 돌보던 아빠의 정성



“아빠가 있어서 든든해. 아빠가 지켜준대.”



독한 항암약 투여를 앞두고 엄마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전에 써 오던 항암약이 듣지 않아 더 힘든 약으로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약을 바꾼다는 것은 병이 더욱 나빠졌다는 의미기도 하지요. 그 어떤 암 환자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되려 엄마 목소리가 어둡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네요.


아빠는 엄마가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정성스럽고 충실한 보호자였습니다. 딸들에게 간호를 맡길 법도 한데도 “아빠가 엄마를 가장 잘 알아”라며 손수 챙겼어요. 수술하고 입원할 때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았습니다. 단벌 신사로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엄마가 부르면 손 닿을 곳에 항상 머물렀어요.


아빠는 잘 때 코를 크게 고는 습관이 있어요. 대개 보호자는 입원실 간이 침상에서 잠을 자는데, 아빠는 침상을 쓰지 못하고 휴게실서 쪽잠을 잤습니다. 엄마나 다른 입원 환자들이 자는 데 방해가 될 까봐서요. 병실을 같이 쓰는 아주머니들이 ‘남편이 어찌 저리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냐’며 한 마디씩 부럽단 소리를 하곤 했지요. 막상 엄마는 '아빠가 쪼그리고 자는 모습이 슬퍼서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했지만요.






위를 전체 절제한 환자는 매 끼니마다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부드러운 음식이더라도 물리적인 힘으로 내려주지 않으면 소화하기 어려워요. 아빠는 엄마 식사가 끝이 나면 엄마를 무릎 앞에 앉혀 놓고 여린 등을 몇 시간이고 도닥이고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겨우 일, 이십 분만 해도 손목이 얼얼해져요. 매일 하루 몇 시간씩 몇 년을 한다는 건 어지간한 애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빠는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투병하는 동안 아빠에게 전적으로 생을 기대며 살았습니다.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아빠와 엄마의 유대와 정은 더욱 단단해졌어요. 그건 자식이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아빠가 굳건한 마음으로 버텨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그 사랑을 더 오래도록 누리지 못해 슬프지마는, 자식인 저는 아빠가 엄마의 남편이었던 것이 감사합니다. 아빠가 엄마 곁을 지켜 주었기에 엄마 마지막 가는 길이 따스해 보였거든요.






어느 날 엄마가 그럽디다.


“너도 배서방이랑 살면서 더 신뢰가 가고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니?
 엄마도 아빠에게 그렇게 느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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