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11시 30분.
금요일 오전이면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이 되어있다. 아침에 덜 서둘러서 좋고 외래 후 점심을 바로 먹기에도 좋아 나는 11시에서 11시 45분 사이에 예약 잡는 걸 좋아한다. 운전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 남강변을 따라 걸어서 병원을 가거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가끔 궁금증 많은 택시 기사님이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나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본다. 거기에 또 친절한 나는 “남편이 도박해서 정신을 놓았어요! 그래서 정신과에 가는 길이예요.”라고 답한다. 처음엔 똑바른 내 대답에 당황해하던 기사님도 1, 2주에 한 번씩 9년째 병원을 가다 보니 이제는 내 속사정까지 훤히 꿰고서 가끔 본인의 차량에 나를 태우게 되면 남편의 안부까지 물어준다. 처음에는 기사님의 질문이나 관심이 귀찮고 싫었는데 이제는 싫지만도 않다. 그만큼 열심히 살아가라는 응원의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나’라는 사람을 기억해준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다 보니 괜찮아진 것 같다.
대학병원의 대기시간은 길다. 하릴없이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병원에 일부러 일찍 도착하는 이유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신과 대기실은 재밌는 곳이다.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다. 나도 걔 중 한 사람이다. 정신과에 입장할 때는 발걸음이 아주 당당하다. ‘내가 정신질환자로 보여요?’ 이런 눈빛을 쏘아대며 아주 당당한 발걸음으로 대기실에 들어가 간호사에게 “김보혜요” 라고 말한다. 마치 ‘나 단골이잖아. 너 나 알지?’ 이런 마음으로. 생년월일이 무엇이냐는 간호사의 당연한 물음에 나는 살짝 빈정 상한 듯 나즈막히 “871014요..” 라고 대답하고는 빈자리를 찾아 앉은 다음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관심 없는 척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유심히 듣는다. 조증이 돋을 때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나도 끼어들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아마 속으로 백 마디는 더 보탰을 거다. 다행이다.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내 사고 치기 전에 간호사가 진료실에 들어가라고 내 이름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