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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Nov 05. 2023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61

북촌의 전설

烈女操

                             孟郊    751-814     


梧오桐동相상待대老로         오동나무는 일생을 같이 살고,

鸳원鸯앙会회双쌍死사◎      원앙은 생사를 같이 한다.

贞정女녀贵귀殉순夫부         열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捨사生생亦역如여此차◎      목숨을 버림이 이와 같구나.

波파澜란誓서不불起기         당신에게 바친 절개 한결같으니

妾첩心심井정中중水수◎      제 마음은 이 우물과 같소이다.


  이 시는 앞 강남곡과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남곡이 인간적인 질박한 정서라면 이것은 유교적인 전통윤리를 주제로 대조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북촌의 전설’이라고 붙여보았습니다. 북촌은 서울의 대표적인 양반촌입니다. 유교적 도리를 생명처럼 알던 사대부들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당연히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강남스타일이 절실하고, 이 북촌 열녀가는 구시대의 유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다만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관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정도일 것입니다.

  한시는 형식적으로 보아 크게 고시와 근체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근체시(近體詩)는 당나라 때에 완성된 이른바 唐詩(당시)의 율격, 형식을 준수한 시를 말하고, 古詩는 그렇지 않은 한시를 일컫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대가 아니라 형식을 기준으로 한 나눔이라 唐 이후에 나온 작품도 고시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漢詩는 대체로 唐詩를 모방했으므로 근체시가 많습니다. 이 시는 당나라 때에 지어졌지만 당시의 형식을 다 갖추지 않았으므로 古詩에 속합니다.

  唐詩의 형식을 잘 지켰다고 좋은 시가 아니고, 어겼다고 해서 나쁜 시도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은 시입니다. 좋은 漢詩를 소개하자면 당연히 그 번역도 중요합니다.      


梧桐相待老

梧桐 오동나무. 梧는 숫나무, 桐은 암나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오동나무는 암수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옛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동을 금슬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시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오동나무는 해로하는 부부처럼 같이 산다고 했습니다. 相은 마주서서. 待老 늙음을 기다린다. 같이 해로한다. 相을 ‘마주서서’라고 하면 시어로서 어색하니 ‘해로’에 그 뜻이 포함되므로 생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대신에 ‘一生’을 덧붙여서 옮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鸳鸯会双死

鸳鸯도 금슬 좋은 부부를 나타낸 상징물압니다. 원앙은 평생을 짝을 이루고 사는 새로 잘못 알고 결혼할 때에 신부에게 약속의 징표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원앙 수컷은 여러 암컷을 거느리고 사는 바람둥이입니다. 그래서 원앙 대신에 오리로 바뀌었는데 그것을 전안(奠雁)이라고 합니다. 会는 미래. 추측. 죽을 것이다. 죽어야 한다. 그러나 시어로서 어색하므로 따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시를 글자를 좇아서 직역하면 시가 파괴되기 쉽습니다. 원작의 자의에 얽매어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시 자신을 잃는 것입니다. 双死。부부가 죽음을 같이 한다. 유교사회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贞女贵殉夫

贞女 정조가 깊은 아내. 贵 중히 여긴다. 殉夫 아내가 지아비를 따라 죽다. 그렇지 못하면 과부, 미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과부란 부덕(婦德)이 모자란 여자이고, 未亡人은 따라 죽지 못한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앞 구에서도 死, 뒷구에서도 捨生이 있으므로 시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생략하고 대신 정절로 대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녀보다는 제목처럼 열녀가 우리에게 익숙한 시어일 것입니다. 옛날에 개가(改嫁)란 집안을 망신시키는 죄악이었습니다.       


舍生亦如此

捨 버리다 포기하다. 生 목숨. 亦 역시. 如此 이와 같다。이 여자의 죽음과 같다. 此는 이 시가 지어진 공간입니다. 열녀가 목숨을 버린 현장으로 우물이 있고, 오동나무가 있고, 원앙이 놀고 있는 곳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波澜誓不起

波澜 물결, 파문. 誓 맹서하다. 서약하다. 부부해로, 한 남편만 섬긴다는 일부종사(一夫從事).  不起 물결이 잔잔하다. 이 구는 시어가 문법을 어겼으므로 誓가 앞으로 나와야 우리 시로 번역이 가능해집니다. 波瀾不起는 정녀의 흔들리지 않는 굳은 절개를 우물의 물결로 비유한 말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기서부터는 열녀의 목소리로 화자가 달라지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음에 주의합니다.        


妾心井中水

妾心 첩, 아내의 마음, 절개. 井中水 우물 물. 내 마음은 우물의 물과 같이 맑고 잔잔하다. 굳다, 흔들리지 않는다. 첩은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을 낮춘 말이므로 ‘제 마음’이라고 옮겨야 좋을 것입니다. 의미대로라면 앞 구와 이 구는 거꾸로 된 것입니다. 한시의 율격을 지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도치시켰을 것입니다. 자신의 굳은 정절을 우물에 비유한 것은 이곳이 열녀가 목숨을 버린 현장임을 암시한 것이라면 더욱 절묘한 기교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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