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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ug 15.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0

涼州詞     변방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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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翰  미상
         

葡포萄도美미酒주夜야光광杯◎배   포도주 야광배 술잔에 가득한데

欲욕飮음琵미琶파馬마上상催◎최   비파소리가 출정을 재촉하는구나. 

醉취臥와沙사場장君군莫막笑소      술취해 사막에 쓰러졌다고 비웃지 마소.

古고人인征정戰전幾기人인回◎회   자고로 싸움터에서 살아돌아온 이 몇이더뇨?     


 중국은 영토확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주변 민족들하고 국경을 다투었습니다. 그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북방의 흉노였습니다. 양주는 그들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변방이었습니다. 변방에서 이민족들과 다투던 병사의 쓰라린 사연을 읊은 일련의 한시를 변방시, 변새시(邊塞詩)라고 하는데 한시의 커다란 장르입니다.

 양주사는 원래 악부의 곡조명이었습니다. 樂府詩(악부시)란 민간에서 노래불려졌던 민요에다 가사를 붙인 시를 말합니다. 민요의 곡조를 詞牌(사패)라고 하는데 양주사는 시의 작품명이 아니라 양주지방에서 불려진  사패 곡조의 이름입니다. 다만 수많은 양주사 중에서도 왕한이 작사한 양주사가 가장 이름이 높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르이지만 구태여 예를 든다면 고려속요가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고려속요가 기록된 책 이름이 <악장가사 樂章歌詞>인데 '악장'이란 '악부'와 같은 뜻입니다. 고려가요 정과정(鄭瓜亭)을 '三眞勺譜(삼진작보)'라고 했는데 삼진작은 정과정이란 가사를 삼진작 곡조로 불렀다는 의미이니 이는 바로 악곡의 이름입니다. 시조에서 평조, 진양, 지름 같은 것도 시조 창의 곡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패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중국의 영향이란 말이 아니라 악부와 같은 장르는 우리도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장르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葡萄美酒夜光杯  

葡萄 포도. 포도는 서역의 특산물이어서 당시에는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美酒 맛있는 술. 夜光杯 옥으로 만든 고급 술잔. 포도로 담근 포도주는 당시에도 매우 귀한 술이었습니다. 玉도 서역에서 많이 출토되므로 이들은 서역 涼州의 특산물이었습니다. 양주는 지금의 감숙성으로 당시에 서역으로 가는 변방의 관문이었습니다.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출전에 앞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술자리였습니다. 그러니 그 목숨값으로 최고 술잔에다가 최고의 술을 마시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술이라도 그것을 목숨과 바꾸어야 하니 그 술맛이 좋기만 할 리가 없습니다.  원시에 서술어가 없어 '가득한데'라고 옮겼습니다.     


欲飮琵琶馬上催    

欲 하고 싶다. 하려고 하다. 飮 마시다, 여기에서는 야광배의 포도주. 琵琶 비파를 닮은 모양의 서역의 현악기. 비파소리는 권주가 또는 출정을 재촉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馬上 말 위에서. 催 출전, 술을 재촉하다. 말 위에서 전사가 술을 마시는지, 여인이 비파를 타는지, 또는 술을 재촉하는지, 죽음을 재촉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만 말을 타고 있으니 전장의 급박함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馬上은 白話(백화)로는 '곧, 바로'라는 부사입니니다. 그렇다면 '재촉'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입니다. 술을 재촉하는 것은 곧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설령 아름다운 여인이 비파를 탄다고 해서 전쟁터에 가는 전사가 즐거울 리 없습니다.   戰士가 언제 戰死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醉臥沙場君莫笑   

醉臥 취해서 눕다. 沙場 모래 밭, 사막. 君 그대. 생략하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莫笑 비웃지 말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출전인데 이리 각박하게 재촉하지 말라. 설령 술에 취해 사막에 누울지라도 그대는 비웃지 말라. 고향산천을 떠나서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에 취해 쓰러진들 허물이 되겠는가? 가끔 운동선수들이 중요한 경기에 나서기 전 날, 술을 마셔 지탄을 받는 일이 있는데 경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여 잠을 이룰 수 없어 그런 짓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전사는 그보다 더 절박한 심정일 것입니다.      


古人征戰幾人回   

古人 옛날부터 전장에 나섰던 병사들. 征戰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전쟁터로 나섬. 幾人 몇 사람이더냐? 드물다. 回 살아서 돌아오다. 幾는 의문사이므로 의문문으로 옮겨야 합니다. 살아온 사람이 드물다는 말은 자신도 살아돌아오기 어렵다는 비장한 심경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술잔을 막지 말라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호탕한 술판이지만 비극적인 전사의 운명을 탄식한 변새시(邊塞詩)입니다.       


   이어지는 양주사 2는 다음과 같습니다.      


秦中花鳥已應闌     고향의 꽃과 새들이 한창일텐데,

塞外風沙猶自寒     사막의 모래바람은 차갑기도 하구나.

夜聽胡笳折杨柳     밤중에 들려오는 버들피리 소리에 

教人意气憶长安     마음은 장안으로 달려가는구나.


  호가는 적군들의 피리소리입니다. 적을 앞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리와 퉁소를 두고 말이 많지만 명쾌하지 못하고, 사전을 찾아보면 더 혼란스럽습니다. 피리는 笛이라 하고, 퉁소는 簫라고 한다면 서로 다르다는 말입니다. 혹은 피리는앞으로 불고, 퉁소는 옆으로 분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선 피리는 한자 觱篥(필률-중국발음으로는 피리)을 우리 음으로 적은 것이니 원래 우리 말이 아니었습니다. 피리를 笛이라고 했는데 胡笛, 羌笛이라고 했으니 북방흉노의 피리입니다.  여기의 호가는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길이는 長笛이 1척4촌이라고 하고, 구멍은 3개에서 5개, 7개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퉁소는 원래 洞簫(통소)로 역시 중국에서 온 말입니다. 阮簫(魏의 완소- 簫의 명인)이라고 했으니 이는 중국 남방의 피리였습니다. 원래 簫는 管이 여러개로 연결된 笙篁과 같은 악기였다고 합니다. 결국 피리라는 말이 중국에서 왔으나 북방에서는 笛이라 했고, 남방에서는 簫라고 했었는데 후세에 이들이 섞여지면서 명칭의 혼란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충무공의 시조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의 호가는 이 시의 胡笳(호가), 즉 笛일 것입니다. 피리의 소리는 날카롭고 음역이 높아서 야전의 신호나 독주에 어울리고, 퉁소 소리는 완만하고 그윽하여 연회 제악에 어울린다면 구분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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