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불편한 진실

태극기에는 우리나라가 없다.

by 김성수

太極태극은 無極무극과 같다. 太는 大와 같고, 지극히 큰 大는 無와 통하고, 無는 有의 근원이라는 것이 道家도가의 사상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인 太極旗태극기는 陰陽음양을 상징하는 紅靑兩極(청홍 양극)이 서로 맞물려 무한히 회전하는 우주 운행의 원리를 표상한다. 陽紅(양홍)은 하늘, 陰靑(음청)은 땅이다. 네 귀에 있는 팔괘는 음양의 변화 양상이다. 그야말로 우주의 모든 생성의 원리가 한데 모인 완벽한 상징, 표상이라고 할 만하다. 겨우 태양 하나만 달랑 그려 넣은 日本旗일본기나 별 하나만 있는 북한의 人共기, 기껏 별 다섯 개만 있는 중국의 五星기가 구멍가게라면, 태극기는 우주가 온통 망라되어있는 대형마트인 셈이니 그 원대한 상징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못내 서운한 것은 태극기에서 우리의 고유성, 상징성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나타내려 하다 보니 정작 우리 고유의 것은 없다.


대한민국 국기라기보다는 유엔기, 萬國旗(만국기)라고 해야 더 적절할 듯싶다. 아니면 中國旗(중국기)였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우리 국기의 太極圖(태극도)는 본래 중국의 사상을 담고 있는 중국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소유욕이 강한 중국인들이 나중에 태극기에 知的소유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전통문화를 우리가 무단히 도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 일 없는 것을 보면 道敎(도교)의 符籍(부적)에 불과했던 太極圖(태극도)를 존엄한 국가의 상징으로 삼은 우리의 무지를 비웃고 있거나, 문화 수출자로서 만족하면서 느긋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왜 하필 우리 선조들은 남의 나라 부적을 숭고한 나라의 상징으로 삼았을까 하는 부끄러움을 누를 길 없다. 아무래도 중국문화를 무조건 숭배하는 사대주의 사상에 절어 붙은 흔적일 것 같다. 일본에 통신사로 간 박영효가 일본에 입항할 때 다른 나라 배들이 국기를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즉흥적으로 그려 걸은 것이 오늘날의 태극기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뱃멀미에 제정신이 아닌 사대주의자에 의해서 급조된 것이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라는 말이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도 황당해서 믿고 싶지 않은 태극기의 내력이다. 뱃멀미로 만들어서 그런지 태극기를 그리려면 하도 복잡하여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그렇게 어려운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혹은 태극의 빨강, 파랑의 上下상하 구도 때문에 남북이 분단되었다고 입방아를 찧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분단 전에 상해 임시정부나 독립군의 태극기는 분명히 음양의 구도가 좌 ․ 우로 되어 있었던 것이, 남북 분단에 즈음하여 얼결에 상 ․ 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해방 전에는 태극기의 좌우 구도처럼 국민은 좌익, 우익으로 나뉘었고, 해방 후에는 上下상하 구도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태극기는 우주만물의 이치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예언서일까? 태극기가 그렇게 신비하다면 남북통일은 의외로 쉽다. 그저 갈라진 태극기의 두 원형 구도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 남북통일의 지름길이다. 신성한 국기를 가지고 실없는 소리를 하여 송구스럽지만 태극기를 볼 때마다 긍지에 앞서 느끼는 착잡한 심정이다.


태극기를 더 위태롭게 하는 것이 근래 벌어지고 있는 태극기의 오남용(誤濫用)이다. 피 끓는 독립군, 삼일만세운동 이래 일찍이 태극기가 요즈음처럼 국론분열과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일에 이용되었던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국회의원에 의하여 탄핵안이 제출되고, 헌재 재판관에 의하여 전원일치 탄핵이 인용된 명약관화한 판결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기를 내걸고 탄핵철회를 부르짖는 사람들에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다. 게다가 태극기보다 훨씬 큰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국민 대신에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심산인가?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애국보수이지만 애국은 나라의 발전과 국익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보수는 정말 지켜내야 할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노력도 없이 남북분단을 고착화하고, 반공 멸공만이 활로라 주장하는 것이 진정 이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 미래의 가치를 지켜내는 애국보수인가? 국수주의를 애국으로 호도하고, 빈익빈부익부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강변하는 것이 애국보수인가? 정부의 모든 정책에 태극기로 반기를 들고 비판하는 것이 애국보수인가? 이제는 정작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대하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태극기의 존엄은 손상되었다. 태극기는 국민의 뜻을 대표하고, 합당해야 존엄할 수 있다. 태극기가 정당치 못한 곳에 있을 때에는 국가를 대표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의사표현과 주장은 정당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면 태극기를 남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엄해야 할 태극기를 보고 섬찟한 두려움을 느낀다면 태극기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닐까해서 두렵다.


통일이 된다면 북쪽에서 가장 문제를 삼을 것이 태극기일 것 같다. 태극기에 이러한 대한 생각이 불공스러운 일이겠지만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올림픽 남북단일팀의 응원에서 태극기와 인공기는 이미 거부당함으로써 그 한시적 운명을 드러낸 셈이다.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을 가지고 올림픽을 개최하면서도 지도 한 장에 밀려나야 하는 것이 태극기의 현실이다. 우리 스스로 국기의 존엄을 해치는 일들이 너무 많고, 국기로서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부족하다. 원대한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태극기는 생각보다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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