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유언을 적은 글.
; 유서 한 통.
방금 끼얹은 냉수의 서늘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거기 올려놓은, 여전히 수신인이 정해지지 않은 유서를 봉투째 찢어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써.
그건 언제나 옳은 주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다시 쓴다.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비 오듯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찬물 샤워를 하고 책상으로 돌아온다. 조금 전에 쓴 형편없는 것을 다시 찢어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
가끔씩 '문학청년 출신'으로서의 호기로움에 기대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내가 요절하지 못한(내게 요절의 상한은 27이다) 유일한 이유는 유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절이 아니라 개죽음이다."
깨나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섬뜩하게 받아들이지만, 나로서는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농담일 뿐이다.
나중에 적절한 애도감을 품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유서랍시고 이 브런치에 있는 기록들이 낭송되는 상상을 가끔씩 한다.
이런 보잘 것 없는 기록들을 지독히도 꾸준히 남겼다니!
보잘 것 없음을 보잘 것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니. 지독하고 꾸준히, 라는 부사로라도 회자되기를.
무언가를 남긴다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그러니까
일단은 계속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