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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May 06. 2021

무언가를 개선할 때 필요한 건 끈기와 노력

그리고 약간의 진상

얼마 전 미국으로 돌아가는 지인 가족이 사용하던 빨래 건조기를 주고 가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미국에 가면 전압이 안 맞아서 사용을 못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주었지만, 사실 중고 거래도 은근히 활발하기에 그보다는 작별 선물로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건조기가 아무래도 제법 무겁고 혼자서 옮기기에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형 짐을 옮길 때 사용하는 접이식 카트를 구매하였습니다. 지인 가족이 이사 가는 날짜에 정확히 맞춰서 건조기를 옮겨야 했기에 여유를 가지고 미리 구매를 진행했습니다. 

 

얼마 전 배송이 왔는데 카트가 생각보다 크고 무거워서 현관에서부터 집으로 옮기는 것도 은근히  고생을 했는데 조립을 하려고 상품을 꺼내보자, 카트의 한편이 찌그러져서 평평한 바닥으로서의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쇼핑몰의 서비스 센터에 채팅 문의를 시도했는데 들려오는 안내 사항은 상품을 창고로 다시 반송하면 환불을 진행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려서 상품을 배송받아서 꾸역꾸역 집까지 들고 온 물건이 파손되어 있는 것도 짜증이 나는 데, 그 무거운 걸 다시 들고 근처 우체국에 직접 반송을 해야만, 또 그게 다시 반송이 잘 되었는지 확인이 된 이후에야 많 환불을 해준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났습니다.

 

저는 자세한 환불 절차를 물었고, 배송업체가 와서 픽업을 해가는 건 안되는지 물어보자, 배송지가 룩셈부르크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근처 우체국이나 배송업체에 직접 가서 반송을 해야 하고 픽업 반송은 거주지가 독일 내에 있을 경우만 가능하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또한, 지금껏 한 번도 파손된 물품을 배송한 사례가 없었기에 더욱 힘들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반복적으로 “this is unfortunately the only option”이라는 안내말에 더욱 저의 집념이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품을 받기 위해 며칠을 기다린 고객에게 파손된 제품을 환불받기 위해 무거운 제품을 들고 직접 다시 배송업체를 찾아가는 것은 고객만족을 지향하는 회사의 비전과 일치하는 정책인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고, 무거운 것을 들고 굳이 반송을 해서 환불을 받느니 차라리 환불 요청은 안 하겠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회사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차이가 있음을 명확하게 말하면서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을 보이고, 문제가 있었던 창고는 어디인지 등 자세히 묻자 (즉, 제가 지금 상당히 진지하다는 걸 표현하자), 그제야 잠시 본인의 매니저와 상의해서 혹시 이번 한 번에 한해서 예외로 물품 반송 없이 환불을 진행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약 2분 뒤 담당자는 이번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상품의 반송 없이 환불을 진행해 주겠다고 합니다. 아마도 물건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기에 괜한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재빨리 환불 조치하고 끝내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품이 배송 중에 파손이 된 건지 애초에 파손된 물건을 창고에 납품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회사의 정책에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고, 만약 제가 적극적으로 정책의 불합리함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면 귀담아듣지 않았을 상황에 약간의 씁쓸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저의 나름 격렬했던 구매 계약으로 맺어진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얼마간의 성과를 보았고, 저는 지금 부서진 카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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