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어차피 오래 다녀야 한다면 한 번쯤은 멋지게

by 아코더

오후 3시, 커피 타임 갖자고 하는 부장의 말에 아랫사람 서너 명이 따라붙어 근처 카페로 간다.


"2000년대 초반에 내가 했던 프로젝트가 말이야."


"그때 내가 쿠웨이트 현장으로 출장 갔을 때 말이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라떼 향을 뭉근하게 풍기며 과거 시절을 늘어놓는 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외친다. 안물안궁.


아랫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부장님들은 높은 확률로 겸손하며 라떼향을 짙게 풍기지 않는다. 본인 경력이 나보다 최소 10년 그 이상 많아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후배의 의견을 경청한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다. (내가 만약 부장이 될 수 있다면) 나도 그런 부장이 되리라 늘 다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꺼리'가 필요하다. 물론 먼저 얘기하지 않고 후배가 질문했을 때 답해 주면서 말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는 '꺼리'여야 한다.


그래서 늘 '인생 프로젝트'를 만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당시에는 부침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정말로 힘들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 프로젝트가 2번 있었다.



도면 작업을 하느라 밤을 꼴딱 새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퇴근한 적이 있었다. 쉬는 날인 근로자의 날 아침 회사 출입구에서 사원증을 태깅하며 묘한 희열을 느꼈다. 카페인으로 간신히 버틴 그 날, 집에 와서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24시간을 풀숙면하며 근로자의 날을 날려보내야 했다. 또 한 번은 내 생일 선물로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받아야 했던 출장이다. 그 출장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 6명과 함께 진행된 공장 내 알람 관련한 워크숍이었는데 그 1주일이 나에게 뜻깊은 경험이 되었다.



그때 몸과 머리는 힘들었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마음 깊이 뿌듯함으로 남았다. 늘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을 한다.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그 과정을 통과하며 배운 것들이 남아 내 것이 된다. 그러니 한번쯤은 멋지게 내가 회사에서 이런 역할을 했다고 할 만한 무겁고 어려운 길을 통과하려고 부러 나선다.


사원 때는 어설퍼도 배우는 자세로, 대리 과장 때는 믿을 만한 불펜 투수 믿을맨(middle man)의 모습으로 업무를 대하고, 마침내 진정한 시니어가 되어 깊이 있는 내공이 담긴 경험을 나눈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참된 직장인의 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여전히 회사는 머리 아픈 곳임을 토로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럼에도 배우겠다는 자세와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자는 깨알 다짐과 선언이 첨가되었을 때 덜 머리 아프고 더 보람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타노스처럼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라는 대사를 하며 등장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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