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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우 Nov 08. 2018

"또 뛰러 나가니?"

달리는 이유를 굳이 글로 표현해보자면 #1

달리기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정말 어렵습니.

나의 페이스에 맞게 달리면 쉽고, 페이스보다 빨리 달리면 힘들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빨리,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리는 것만을 해왔어요(학교 체력장에서는 항상 죽을 힘을 다해야 했죠).

그래서 그런지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항상 묻습니다.


"그 힘든 걸 왜...?"


그럴때마다, 솔직히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달리는 이유는 몸으로 경험되는 것인데, 그 경험하는 것들은 매번 그 모양이 다르고, 시기에 따라 경험을 소화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을 받았을 때 매번 깊게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달리는 이유를 굳이 글로 표현해보자면' 이라는 시리즈를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밑에 첫 글은 사실 9월 10일에 인스타에 올렸던 것! #서울숲맨발달리기트립 에 오셨던 게스트 분이 감깊게 읽으셨다고 하셔서. 일단 이 글로 '달리는 이유를 굳이 말로 표현해보자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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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0일


“또 뛰러 나가니?”

Photo by Jakub Kriz on Unsplash

3년 전. 달리기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아들이 어머니는 신기했다. 시간만 나면 달리고, 저녁 먹기 전에는 꼭 달려야 한다며 그냥 자기 밥은 한쪽에 치워두면 데워 먹는다고 한다. 


“도대체 그 힘든 달리기가 뭐가 좋니?” 하고 물으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요새는, 아버지도 내 달리기 기운에 감염되어서 거의 맨날 달리신다. 같이 석촌호수 명상 달리기를 2, 3번정도 하였는데, 그 이후로 달리기의 맛을 보셨다. 저번주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달리셨고, 이제는 출장 가실 때도 달릴 옷을 준비해 가신다. 퇴근하고 피곤해서 안 달리려고 할 때, "오늘 달릴까?" 하시면서 물어본다. 헐... 이제는 어머니도 “어머, 나도 이제 달려야 되나 봐!” 하신다). 나도 나 자신한테 많이 물어봤다. 나는 왜 달리기를 좋아할까? 왜 달릴까?


오늘은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는데 계속 내 손에는 잡히지 않는 문어 놈이 내가 가는 길마다 먹물을 뿜어놓고 다니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기분이 희한하게 나빴다. 술이 땡겼다. 자주 맥주와 치킨을 먹던 친구에게 술을 먹자고 전화를 걸고 싶었다. 참았다. 이 불쾌함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니 7시 50분. 배가 고프고 몸에 힘이 별로 없었다. 이미 점심시간에 운동한 상태기도 했고. 그런데 내 몸은 내 머리와는 다르게, 어떠한 원대한 운명에 따르듯이 옷을 챙기고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내 몸은 가끔 이렇게 나를 당황하게 할 때가 있다. 내 머리가 아무리 거부해도 몸이 이렇게 맘대로 작동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거 어떻게 보면 정말 좋은 습관이고, 어떻게 보면 중독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 천천히 석촌호수로 갔다. 슬금슬금, 슬금슬금, 걷는 속도랑 비슷한 속도로, 대신 달리는 리듬과 동작을 유지하면서.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 명상달리기 트립에 왔던 미국인 Nisha가 남겨준 트립 리뷰가 생각났다. Nisha는 ‘앞으로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경험을 했다. 달리기 전 명상은 내 달리기를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줬다'라고 썼다. 읽으며 부끄러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나는 혼자 달릴 때는 달리기 전에 명상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지금쯤 LA의 집에 돌아가 있을 Nisha에게 감사해하며 혼자 석촌호수에서 명상을 했다. 석촌호수 트립을 할 때는 오신 분들을 위해서 했다면, 온전히 나를 위해 했다. 타이머에 5분을 맞추고, 5분 명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눈 앞에 펼쳐진 밤의 석촌호수를 바라보았다. 먹물을 뿜어 대던 문어는 어느새 없어졌었다. 많은 사람이 내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산책나온 커플들,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 달리는 사람들... 


Derek Sivers라고 좋아하는 미국의 작가/사업가가 있다. 그는 뉴질랜드에 사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Photo by Joel Holland on Unsplash
“와 정말 아릅다구나!!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몇억 년 후에는 가루도 남지 않고 없어지겠지.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앞으로 사랑할 사람들도. 다. 무로 돌아가는 거야.”

(위는 내 맘대로 줄여서 각색 및 해석한 것. 실제로는 이렇게 말했다: I’m living in New Zealand now, and I step outside, it’s just gorgeous,  I’m surrounded by nature and blue skies and I just inhale and I think  yeah, this is all going to disappear. It’s all going to go to shit.  Pollution is going to wreck this all.)


엄청난 허무주의 적인 시선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우주에 존재하는 일시적 생명의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바라보면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sarcasm). 그리고 이렇게 다른 관점에 자신의 삶을 놓아보면, 일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Derek은 이렇게 말한다.


"근데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야. 정 반대야. 이 관점을 갖고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해져. 내 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모두 정말 소중해지고 더욱 값진 것으로 느껴져."

(원문:  But I don’t think like that in an awful doom and gloom way, you can tell  I’m not depressed, but it’s just part of my appreciation for everything  now. And every person I know.  And even just my health. Even when I stand up in the morning, I wake up  full of energy and I think yep, in a couple decades, that’s not going to  happen anymore. I really appreciate this. So yeah it’s more just a deep  mindset. )


Derek에게 뉴질랜드의 자연이 이러한 맥락을 제공한다면, 나에게는 달리기가 이러한 맥락을 제공해주는 경험의 문이다. 석촌호수가 가까워 호수 둘레를 주로 달린다. 달리다 보면, 온갖 연령대의 사람들, 나무들, 꽃들, 호수,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콧대 높은 건물, 쇼핑몰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오른쪽에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치맥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잠시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를 달리는 나의 기분과 감정, 속도가 매 순간 변하는 것을 느낀다. 숨과 내 발이 땅에 닿는 리듬에만 집중하면서, 나는 계속 주위를 그저 본다. 내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그러다 보면, 내가 의식적으로 마주하기 싫어서 묻어 놓았던 감정들이 내 안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그러면 이놈들도, 그냥 본다. 그러다 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보이고, 인정한다. 


인정하면, 감정들은 천천히 나를 떠난다. 만약 내가 용서하지 못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혹은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간다.


Photo by Bryan Goff on Unsplash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있는 감정들은, 더 오래, 더 목적 없이 달리다 보면 튀어나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감정들을 내가 지금 마주하지 못한 것은, 내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벚꽃이 아무리 이쁘다 해도, 겨울에 피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봄이 오면, 벚꽃은 자연스레 핀다.


물론, 이건 다 내가 나 편하라고 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근데, 나라도 나 자신을 편하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나라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쓰다 보니 길어진다. 어쨋든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은데, 그중 하나는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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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달리기를 이미 좋아하시거나,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시는 경우 일 것 같습니다. 한달 전에 서울숲 맨발 달리기 트립에 오셨던 게스트분이,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정리하고, 본인 블로그에 포스트를 하셨다고 인스타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 포스트에 적어주신 내용이 달리기가 어려운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허락을 받고 포스트를  공유합니다. 


마지막으로, 첫번재 글 '295일 동안의 명상, 달리기, 근력운동 기록' 이어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배경과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달리는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짧게 쓰는게 쉽지가 않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새로운 글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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