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겠지. 너 자신이 누군지도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아기가 누구인지도. —로버트 하인라인, 「너희 모든 좀비는」
<매트릭스><위플래쉬>와 함께 내가 가장 많이 본 영화인 <타임 패러독스>의 원작 「너희 모든 좀비는」을 내 수업에서 다루는 날이 왔다. 과거-현재-미래 시간의 중첩을 그린 소설인데,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면 ‘미래’의 나인 ‘현재’의 나는 내가 원했던 존재 상태 그 이상이 아닌가 싶다. 삶은 항상 백 퍼센트 완벽하게 펼쳐지는데 지금의 완벽성에 맹점을 드리우는 것이 욕망이다.
무엇이 부족한가? 부족하다는 생각만이 오직 부족하다. 최상의 뷰를 가진 새 아파트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샤인머스캣 한 박스를 사다 놓고 영화를 보면서 소설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나.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는 에피쿠로스의 절대 평정, 아타락시아는 자족에서 온다.
이번에 <타임 패러독스>를 다시 보기 위해 DVD 플레이어까지 샀다. 플레이어가 없어 소장 DVD를 신발장에 쟁여 놓고 있었는데(아파트 신발장은 CD 및 DVD 장으로 적격이다) 하나씩 꺼내볼 생각을 하니 봄풀처럼 파릇파릇해진다. <타임 패러독스>는 원작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옮겨놨는데(옮겨놨기에) 영화가 훨씬 좋다. 에단 호크보다도 사라 스누크라는 낯선 배우가 원작을 백 배 살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여자이자 남자이며 나의 부모이자 자식인 나. 나와 내가 만나 낳은 나. 인간이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뿐인데, 이 꿈 같은 현실에 실재하는 전부는 나이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테마를 걸출하게 형상화한 것이 오늘의 작품이다. 장르 분류상 SF에 속하지만 나는 이런 작품을 ‘리얼-리얼리즘’이라 부른다(물론 내가 지은 말이다).
하인라인은 SF를 ‘Speculative Fiction’(사변소설)의 뜻으로 사용한 최초의 작가인데, 단순 사변(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심층의 진실, 진정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을 일컫는 말이 ‘리얼-리얼리즘’이다. 그런데 리얼-리얼리즘 작품은 ‘사변적’일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리얼리티를 다루기 때문이다. 내가 반복해서 보는 작품들은 대개 리얼-리얼리즘에 속하는데, 여러 번 볼 것이 아니면 한 번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인라인의 이 소설이 국내에 정식 출간되기 전, 어디선가 그 줄거리를 접하고는 전문을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구한 것이 <판타스틱>이라는 중고 책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SF 잡지인데 거기 실렸을 당시 제목은 「그대들은 모두 좀비」였다. 아직도 그 제목이 입에 붙긴 하지만 내용상 「너희 모든 좀비들은」으로 번역하는 게 맞는다. 2017년 출간된 단편집 『하인라인 판타지』에선 그렇게 번역됐다가 재출간된 전집에서는 ‘들’을 빼고 「너희 모든 좀비는」으로 새단장했다.
하인라인의 하드커버 전집이 작년에 출간된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는데,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행색이지만 ‘냉장고 코드 뽑기’(텅 비우기)를 주기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미니멀리즘 고수로서 전집 구입은 자제하기로 했다. 대신 학교 도서관에 전권을 신청해 혼자 보고 있다.
최애작을 다루게 된 기쁨에 잡설이 길었다. 길어진 김에 하나 더 붙인다. 오래전 이 소설을 토대로 쓴 에세이 한 편이 있는데, 작년에 브런치에 올렸다가 발행 취소로 서랍에 들어갔으나 다시 꺼내본다. *「인생의 목표」
“지금 너는 새로운 삶의 시작에 서 있다. 그건 벅찬 일일 수 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을 안다는 것이.” —<타임 패러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