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02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장작, 단편소설

by 김태선


회계 관리를 맡고 있는 민서가 도쿄에 오게 된 것은 최근 일 년 동안 회사 형편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마케팅부에서 이직한 직원 빈자리가 충원되지 않았고, 일본어가 된다는 이유로 마케팅 업무 공백을 메꾸고 있었다. 일본 내 한국계 회사와 협업하여 신제품 홍보도 해 왔기에 이번 전시회 출장은 당연해 보였다.


다행히 첫날부터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사장은 지친 기색이 없다. 아직은 미모의 자취가 남아 있지만 젊다고 할 수 없는 오십 대 초반의 민서는 내근에 익숙해서인지 오후가 되자 몹시 지쳤다.


폐장을 알리는 음악이 흐르자, 피로를 감춘 채 하루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는 데 안도 했다. 전시장은 금방 텅 비어 갔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길 건너편 상가에서 굽이 낮은 편안한 신발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두에서 부은 발을 번갈아 빼내면서 테이블 위의 제품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민서 앞에 섰다.


하루토였다. 그는 웃으며 ‘힘내요’라고 했다. 피로감을 들킨 것만 같아 당황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가 계속 전시회장에 머물렀던 걸까? 참여사가 많으니 꼼꼼히 살핀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선물을 주려고 온 사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을 들어 올리고 ‘힘내라’라고 했다. 그뿐이다. 아무 용건이 없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테이블 아래 있는 캐리어를 꺼내 제품을 안에 넣으며 사장이 말했다.

“우리가 야구선수는 아니잖아요.”

“네?”

“경기장에 있는 운동선수 말이에요. 힘내라고 하시니, 재일 한국인일까요?”


그러고 보니 하루토 상은 한국말로 힘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 같았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그냥 한국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인이어도 필요하다면 한국어로 ‘힘내라’를 배우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성의가 비즈니스에서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민서는 그의 명함을 정리할 때 ‘힘내라’를 메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잉크가 부드럽게 나오는 볼펜으로 쓴 힘. 내. 라. 세 글자가 연상되자 정말로 힘이 나는 듯했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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