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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Dec 21. 2020

홈레코딩의 전자와 후자의 선순환관계

음악 창작과 사운드 엔지니어링은 상호작용으로 깊어진다

삼성그룹에는 회사를 구분하는 유명한 기준이 있다. 삼성전자와 후자. 삼성그룹 내 삼성전자의 위상이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그렇게 구분한다는 얘기다. 한때는 물산 건설도 전도유망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선행해야 하는 일(전자)과, 이후 해야 하는 일(후자)이 있게 마련이다. 건설에서는 공정관리의 선행 Activity와 후행 Activ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액티비티 간 관계도 세부적으로 정의된다. 선행이 끝나고 후행이 시작하는 FS(Finish to Start), 선행이 시작해야 후행이 끝나는 SF(Start to Finish), 선행이 시작해야 후행이 시작하는 SS(Start to Start), 선행이 끝나야 후행이 끝나는 FF(Finish to Finish). 


홈레코딩을 하면서도 전자와 후자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액티비티의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디까지나 아주 거친, 개인적인 구분이다.)



1. 전자 : 음악을 창작하는 과정

음악을 창작하는 것을 전자라고 구분하고 싶다. 음악을 만들고 싶은 어떤 영감이나 아이디어, 혹은 순간 떠오르는 발상 등으로 테마를 만들고, 테마로부터 음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코드를 가지고 놀다가 좀 더 악기를 입혀보고, 멜로디도 만들어 본다. 이것저것 입힐수록 제법 음악 같은 느낌이 난다. 어느 순간 가사를 입혀보고 싶고 노래로 부르게 만들고 싶어 져서 좀 더 다듬기 시작한다. 창작의 과정이라고나 할까. 


창의성도 필요하고 호기심이나 모험심도 필요하다. 좀 더 재미를 추구하는 느낌으로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 음악을 듣는 것 못지않게 만드는 것은 재미난 과정이니. 아픔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결핍이나, 아쉬움, 혹은 상처가 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으로 시작해서 조금 더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싶다.



2. 후자 : 음악을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

믹싱과 마스터링을 배우고 적용해보니, 이 과정은 정말 엔지니어링이 맞다. 아무리 훌륭한 축구선수로 팀을 구성해도 각자에 맞는 포지션을 배분하고 전략과 전술로 유기적인 구성을 만들지 않는다면 좋은 팀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연주자들로 훌륭한 연주를 했다고 해도 음악이 전체로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귀에 듣기 좋은 음색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음악이 아닐 것이다. 믹싱과 마스터링의 과정은 음악의 이해와 음향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전체 밸런스를 조율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제거하고, 적절한 공간감과 톤을 형성하는 조각 같은 작업이다. 


좋은 귀가 필요하고, 끈질김과 인내심도 필요하고 정확한 판단력도 필요하다. 어느 부분에서는 냉정함도 필요한 것 같다. 원작자에 대한 존중과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음향적으로 훌륭한 모니터링 환경과 좋은 장비도 필요하겠다. 



3. 피드백 루프 : 전자와 후자의 유기적 관계

피드백 루프(순환 관계)란 어떤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그 결과가 원래의 사건에 다시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전자가 후자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후자로 갔다가 다시 전자로 오는 것이다. 


현대의 음악세계는 많은 영역이 점점 세분화되어가는 것 같다. 작곡가, 작사가와 믹싱 엔지니어,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서로 다른 것처럼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전문화된 것 같다. 대기업에서도 업무는 매우 세분화되어 자신의 업무 외에는 경험할 기회가 잘 없다. 하지만 홈레코딩을 하면 음악의 전자와 후자를 둘 다 경험해 볼 수 있다. 장비의 제한, 악기의 부족함, 혹은 보컬이나 플러그인의 한계는 분명 있겠지만 전자와 후자를 다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이렇게 경험해본 전자와 후자는 선형적인 관계가 아니라 전자를 통해 후자가 발전하고 후자를 통해 전자가 더 깊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끝나고 시작하는 관계가 아니라 피드백 루프로, 서로 영향을 주는 액티비티라는 생각이다. 


믹싱이 창작에 어떻게 영향을 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으나,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서 악기의 주파수 특성을 이해하면 여러 소리를 사용할 때 좀 더 음향적 특성을 고려하게 된다. 이번에 녹음을 해보니 내 목소리는 200-800 Hz 사이에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악기 소리 중 Lounge Lizard EP-4라는 일렉 피아노가 있는데, 녹음한 내 목소리와 주파수가 겹치는지 뭉치게 들리더라. EQ로 처리하는 데 쉽지 않았다. 좋아하는 악기와 내 목소리의 주파수 특성을 이해하고 보니 두 가지를 동시에 겹쳐 놓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만약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면 옥타브를 바꾸거나 톤을 바꾸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악기별 주파수를 고려하여 특정 주파수에 에너지가 몰리지 않도록 분산하면 전체로서 듣기에 좀 더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교훈을 얻었다. 



내 목소리의 채널 EQ 그래프.


한 편으로는 헷갈리는 일이기도 하다. 감각에 의지하는 전자와 이성에 의지하는 후자랄까.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쓰는 듯하다. 전자는 좌뇌를, 후자는 우뇌를 쓰는 것 같다. 사용하는 영역이 다른 것이 확연히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경험 산업에 종사하는 건설 엔지니어의 장점은 경험에서 배운 것을 잘 살린다는 것과, 일단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나면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자와 후자를 경험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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