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벽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 달 전 같이 일하던 동료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태균 씨는 여기 오래 있을 사람 아니잖아~ 아쉬워서 그러지!"
"음? 저 오래 다니고 싶은데.." 이미 2년 동안 5 군데 정도를 돌아다닌 사람이 신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오래 다닐 사람이 아니야. 누가 봐도 알 수 있어." 동료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태균 씨는 시선이 이곳이 아니라 항상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느낌이야.. 오래 다닐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고!"
뭐랄까.. 마치 세상을 떠도는 음유시인 같이 표현해 주셔서 괜스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는 대충 두 달 뒤에 일을 그만두었다.
대충 이런 눈빛으로 다녔던 것 같다.
나는 호불호가 강한 타입이다. 즉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하기 싫은 건 아무리 노력해도 꾹 참고 이어나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아니 대책이 없더라도 일단 그만둬 버린다.
그래서 인생에서 바라는 점을 더더욱 신중하게 찾아야 했다.
어쭙잖게 '해볼까?' 하는 마인드로 평생직장을 정해버리면, 노년에 지금보다 몇 배는 민폐를 끼칠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냥 돈이 많은데 유명하지 않은 상태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누가 길을 강제로라도 정해준다면, 투덜거리며 살아가기라도 할 텐데 지구는 나의 길을 쉽사리 정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확신의 T 다. 공감능력이 전무하다. 내 귀찮음에 공감해서 가만히 있어도 이것저것 퍼주지 않는다. 배고프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움직여야 한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대부분 직관적이다. 그래서 나같이 감성적인(이라 말하고 게으른) 인간은 세상살이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나 보다.
스스로를 잘 몰랐다. 즉흥적으로 좋고 싫고를 말할 순 있지만,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뭘 원하고 원하지 않는가를. 타인의 생각들은 많이 읽고 보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질문한 적은 없었다.
난.. 난.. 나태한 개돼지가 되고 싶어요..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거라고 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고 약간의 깨달음과 대부분의 실패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갈려나가는 와중에 번뜩이며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하고 싶지 않구나!' 하며 깨닫게 되는 커리큘럼인 것이다. 아아... 깎아나가는 인생이여.... 나이를 먹을수록 끌어안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걸 버리고 줄여나가며 원석을 발굴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애초에 가진 게 적은 사람은 어떡하란 말인가.. 깎으려고 칼질 한 번을 하면 경험의 반이 날아가 버리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떡하라고..
조각은 어려워..
그래서 33살 즈음부터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일들을 시답잖은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 다녔다. 덩어리를 한 조각 한 조각 포를 뜨기를 5년, 나는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봉투당 9알씩 담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문득 하고 싶은 일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