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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희 Mar 29. 2024

달콤한 남(편)의 육아 구경

갓난아기 우는 소리를 그저 소음의 하나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그 소리에 심신의 긴장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엄마도 있다.


나다.


아기의 데시벨이 고공행진하면 실제 나의 뒷목도 같이 빳빳하게 올라붙는다. 칭얼댐이 잦아들면 썰물이 빠져나간 바다처럼 내면도 삭 고요해진다. 남편(그는 진화론에 근거한 발언을 종종 한다)이 말하길 생명체를 지켜내기 위한 어미의 본능 같단다. 때는 바야흐로, 남편은 사냥 가고 여자는 집터를 지키던 고대 원시 부족. 야생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엄마의 청각이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발달한 것 같다고.


울어 재끼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내버려 두고 싶은데 그건 내 이성 쪽 사정인가 보다. 째깍 반응하는 신경 세포를 보건대 애석하게도 일리가 있는 것만 같다.


남편은 그런 나를 달래려 종종 아기로부터 분리시켜 주었다. 외출하고 오라든지 본인이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훌쩍 떠났다. 그럴 때면 몸 곳곳이 잔잔하게 이완되며 숨이 쉬어졌고, 남편은 그런 자신의 멋짐에 내심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차례 혼자 있어보니 어딘지 헛헛했다. 그의 뿌듯함에게는 약간 유감이지만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무려 20년짜리 긴긴 육아 마라톤에서 아기와 나를 떨어뜨려 놓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물론 그것도 고맙고 좋지만 보다 달콤한 힐링이 있다는 걸..


그 힐링은 남이, 특히 남편이 애기 보는 광경을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 거라는 걸...


아기가 울든 웃든 내 눈앞에 있고, 보육자가 나 다음으로 아기를 잘 이해하는 아빠다. 일단 이 두 가지 점이 엄마로서 안심이 된다. 그리고 어쩐지 중독 현상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기와 붙어있을 때 하도 교감신경이 바짝 서있어서 인지 아기와 떨어져 있으면 뭐가 다 시시하다. 보고 싶고 안고 싶다......




주중 내내 날씨 어플만 들여다보았다. 예보대로 일요일 오늘은 영상 20도에 해는 쨍하니 맑은 날! 딸에게 홍매화가 아름답다는 창덕궁을 보여주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세 식구가 표를 끊고 들어가니 궁 곳곳에 사람이 북적인다. 정말 봄이 왔다.


파란 하늘 밑, 창덕궁의 드넓은 마당에서 아이가 조그만 발걸음으로 아빠를 향해 달려간다.


"아빠아아아아아"


부르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멋들어진 창덕궁의 처마를 등지고 돌아선 채, 저쪽에서 두 팔 벌려 기다랗게 서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스런 눈빛에.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함박웃음과 바닥에 작게 오므리는 몸을 하고는.


"아이쿠, 왔어?"


둘이 꼭 부둥켜안고 뭐라 뭐라 꽁냥 댄다. 잘 노네. 몸은 적당히 떨어져 홀가분하면서, 볼거리는 충족되어 달달한 지금, 바랄 게 없다.


여보, 계속해.

나는 없다고 생각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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