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아이를 돌보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아이를 길러낸다는 건 산고를 이겨낸 것보다 혹독한 감내와 짭짤한 눈물까지 필수인 굉장한 일이었다. 업무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수입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밑바닥엔 자격지심이 녹아 있었다.
친척 어른들께 태어난 아기를 보여드리던 날이었다. 아빠의 오형제들 중 가장 서글서글 성격 좋기로 일등인 막내 삼촌이 물었다. "토희는 그럼 육아만 하는 거야?" 워낙 악의가 없는 삼촌이라 명절날 '결혼 해야지? 애 낳아야지?' 같은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빠르게 스치는 당황스러움.. 현재는 그렇다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왠지 씁쓸해졌고 이내 "육아만 하는 거야?"에서 '만'이라는 조사를 걸고넘어진다, 속으로. 애기만 보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니. 24시간 동안 한 인간의 의식주+배설을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쉴 틈 없는 일인지, 공장이 얼마나 바삐 돌아가는지 알까.
아마 돌아갈 회사가 있는 휴직 상태의 엄마들은 마음이 또 다를지 모른다. 질문이 다르게 들렸을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자진 퇴사 후 독립적으로 일을 꾸려나가다 아이를 낳아서 흔들린다. 때때로 상상하곤 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회적 성취를 거머쥐었다면 잡생각 없이 사랑만 주었을까? 육아에만 백프로 집중했을까? 커리어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키우니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렇지만 단 하루도 그 감정에 패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아도 보아도 간직하고 싶은 요 앙증맞은 발과, 맡아도 맡아도 사랑스러운 아기 살 냄새. 인생 시계에서 찰나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 불안이 아기를 향한 엄마의 눈을 가리지 못하도록 많은 날을 정신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그러다 왕왕 흔들리고 흔들리다 또 바로 서고.
방 안에는 아기와 나 둘 뿐. 오직 거센 아기 울음소리만이 가득 찬 그 고적한 방에 서서, 나는 작디작은 아기를 가슴팍에 매어 안고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건 아기를 따라 눈물을 훔치는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잘 크고 있는 거라고 얘기해줬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한참을 어색했던 수식어, 엄마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언제나 부끄러웠던 어른이라는 단어도 아주 조금은 스스로에게 허락해 준다.
가끔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을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아기에게서 받는 순간이 있다. 언제나 다시 용서해 주고 사랑을 보여주는 딸을 위해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함에 앞서 떨리고 무섭다. 엄마라는 훈장을 가슴에 지닌 채, 두려움을 떨치고 사회 속으로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