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이 뭔데?

마음의 본질만 알아도 행복 당첨

by 토희

토희 글의 감히 전부라 할 수 있는 알아차림.

알아차림을 사람들이 읽는 글로 쓰려할 때 나는 떨렸다. 그것은 내 행복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산천을 초록으로 물 들일 사랑하는 봄소식 만큼이나 설레는 주제고 소중한 주제다. 쉽게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칫하면 한 없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또는 관념론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고뇌하게 만드는 주제가 알아차림 일지도 몰랐다. 그럼 나는 무거워진 생각을 또다시 ‘알아차리고’ 내가 경험한 만큼만 가볍게 쓴다.

긴 서론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알아차림이란 지금 이 순간에도 무거워진 마음을 자각해서 그 자리에 여유를 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괴로움 없는 삶의 기반을 함께 다져보면 어떨지 풋풋한 권유의 뜻이고 그렇게 읽히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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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함께 프로젝트하는 동료의 행동을 보자마자 불쾌한 뭐시기를 알아차렸다. '불쾌함'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이유는 그건 말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체의 느낌 같은 거라서다.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초반에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다. 느낌이란 번쩍하고 순식간에 일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알아차렸냐 하면 내 마음을 늘상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그의 행동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 신체에 변화를 느껴서였다. 가슴이 쿵덕거리는 느낌이었달까. 그걸 알아차리고 나면 상황에 따라서 별 일 아니게 넘겨지는 경우가 있고, 느낌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감정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알아차린 느낌은 감정이 되어 있었고, 감정을 가만 살펴보니 시기심에 가까웠다. 질투 같은 것.


일에 열의가 많은 편이다. 신이 나에게 돈 왕창 줄까? 돈 잘 버는 능력 줄까? 물어본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후자를 택하고 싶다. 이런 내가 그에게 느낀 감정 또한 각자 진행하고 있던 과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직 준비 기간이 꽤 남아있는데 그가 먼저 끝내고 보고를 했다.


나는 불쾌한 뭐시기를 느꼈고 정황상 그게 불안함 내지는 시기심이라고 자각을 했다. 알아차리는 게 대체 뭘까? 반대로 알아차리지 않는 건 어떤 걸 말할까? 누구나 감정에 사로잡혀본 적이 있을 거다. 시기심에 사로잡히면 그를 몹시 미워하는 마음이 나고,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헐뜯고 싶은 마음까지 일이 커질 수도 있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영락없이 괴롭다.




여기서 잠깐. 이걸 읽고 있는 독자는 마음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묻고 싶다. 나는 몰랐다. 알고 나서 보니 30년을 방황했던 이유에 마음의 특성을 모른 것이 한몫 단단히 했더라. 알았을 때 적잖이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것도 모르고 살았나 싶어서. 진짜 무지막지하게 무지했구나 싶어서.


마음의 가장 큰 성질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은결 마술사의 비둘기처럼 나타나라 뿅! 사라져라 뿅! 하듯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내 의도대로 조종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마음이 내 뜻대로 된다면, 내 안에 원치 않은 시기심이 일어났을 때 뚝딱 없앨 수 있어야 한다. 배우가 슬픈 감정신을 찍을 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인공 눈물의 도움을 받는 걸 연예가 중계에서 내가 다 봤다.


즉, 이렇게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이고,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있으면 된다는 뜻인데, 우리는 뭔가를 늘 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괴롭다. 여기에서 늘 허덕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화 안낼게."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다짐하고 참는 것일 뿐, 각자마다 취약한 특정 상황에 놓이면 화는 자동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알아차림을 한다고 해서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애초에 성립이 불가한 말이다. 이미 일어나버린 괴로움을 알아차리는 것이 불편한 마음을 대하는 최선이다.




이런 마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불편한 감정, 욕구에 대한 불만족 같은 감정을 없애고 싶어서 곱씹고 곱씹다가 순식간에 괴로움이란 불구덩이에 빠졌다. 이번에는 아무런 개입없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만 해 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진폭은 저절로 엷어진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힘든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은 꼭 괜찮아진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마음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해보았다. 어제 먹고 싶은 게 지금은 먹기 싫고, 작년에 가까웠던 친구와도 지금은 소원하고 그러지 않나. 그러니 이 변화무쌍한 마음에 너무 집착할 바가 못됨을 알아 감정에 조금 자유로워져 보는 건 어떨까.


알아차림을 계속하다 보면 타인을 시기하는 내 작은 그릇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쉽게도 당장 갈아 끼울수는 없다. 알아차리는 걸 조금 한다 해서 마음 기저의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피를 보면 소스라치는 사람은 마음 몇 번 알아차린다고 해도 같은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기란 어렵다. '천성은 못 고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거다.


다만 내 안에 시기심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가령 내 감정에 휩싸여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내 작업물이 하찮아 보이는 부정적인 마음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은 시기심이 일더라’ 라면서 동료의 행동을 굳이 안 보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내 시기심을 알아차린 전적으로 인해 당황하지 않고 빙그레 웃을 수도 있지 않겠나. 알아차림으로 인해 나쁜 상황으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을 방지하면서 또 다른 나의 2차 괴로움을 짓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지혜롭고 나에게 이로운 삶이 가능해진다.




알아차림으로 내 부정적 감정을 마술사처럼 사라지게 하거나 습관을 180도 바꾼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를 괴롭히던 마음을 꾸준히 알아차리면서 평생을 찾아 헤매던 마음의 작은 여유와 안정을 얻었고, 자책하는 습관을 제법 털어냈다. 이밖에 소박하지만 나에겐 결코 소박하지 않은 변화들에도 감사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일어난 마음을 까딱 놓치기는 아주 쉽다. 한 번은 일을 하다가 미치고 팔짝 뛰도록 작업이 안 풀릴 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바를 정자로 체크하면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바를 정 네다섯 개 정도 그렸을 때 그려야 한다는 것을 깜빡 하고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결국 그 작업은 막판에 대충 마무리됐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일어나는 마음, 현재 하고 있는 행동에 되도록 깨어 있는 연습을 한다. 지금, 이것! 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것'이고 행복으로 가는 윤택한 길이다. 이런 자각을 꾸우준히 하다 보면 본래 습성도 변화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 자동 반사적으로 솟아나는 분노도 알아차림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 돌이킨 마음이 또 다른 나의 습성이 된다. 수천만 번, 수억만 번 알아차리면 허공에 바람이 지나다니듯 끝내 무엇에도 걸림 없는 마음을 나도 낼 수 있을까? 얼마나 마음이 자유로울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10년 뒤에 이 글을 꺼내 읽으며 '아이고 귀여웠네.'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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