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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May 31. 2017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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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맛있는 것도 먹고 꽤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씁쓸했다. 친구들 탓은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그들의 기계적인 일상이 곧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날 밤새 뒤척였다. 전날 커피를 과하게 마신 탓이었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커피 잔을 치우는 것은 내게 익숙한 일과다. 피곤함을 덜려면 하루에 커피 두세 잔은 어쩔 수 없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직접 내린 커피를 처음 맛봤다. 난 커피의 쓴 맛에 한 번, 그리고 이를 마시는 어른들의 지독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커피 맛 우유와 사탕이 그렇듯 캐러멜 냄새가 진동하는 게 커피라고 생각했으니까.    



알람소리에 억지로 일어난 아침. 매일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천천히 음미해봤다. 갓 내린 커피에서 쓴맛, 고소한 맛, 짠맛, 신맛 등이 느껴졌다. 진한 커피의 향과 맛이 온몸의 감각을 깨웠고 조급했던 마음엔 여유가 찾아왔다. 커피 한 잔 하자는 누군가의 제안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메마르고 답답해 보이는 일상도 찬찬히 살펴보면 꽤 살맛나는 것일 수 있듯.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는 것. 커피와 일상의 공통점이다. 커피는 잠을 깨우고 갈증을 해소시키지만 누군가는 이를 음미한다. 누군가는 살아가려 애쓰지만 사실 삶이란 예술 작품처럼 즐기며 감상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것. 무관심했던 일에 관심을 갖고 되돌아보는 것. 그동안 내가 너무 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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