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 vs 나의 성장
여고시절 입학식날부터, 그러니까 28년 지기 친구가 있다. 입학식 후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교실에서 선생님의 전달사항을 들을 때, 교실 뒤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눈 엄마들 덕분에 첫날부터 친구가 됐더랬다. 전체 11반 중에 4개 반이었던 이과를 선택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공대학부로 가게 되었던 친구와 나는 대학도 나란히 졸업하여 밀레니엄 학번답게 경쟁사인 굴지의 대기업 공채에 나란히 합격했다. 친구는 S사, 나는 H사.
비슷한 길을 걷는 친구와 결혼 전에는 종종 만나 맥주를 기울이며 사는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서로의 가정사나 직장 생활 등 모든 이야기가 넘쳐났었다. 합숙으로 몇 주 간 이루어지는 신입사원 입사교육 때 이야기도 있었다. 캐리어 가방에 짐을 싸들고 첫 입사를 하러 집을 나서던 때, 친구의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셨단다. 이제 집에서 떠나 타지에서 따로 살다가 결혼할 텐데, 이제 엄마 품을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
살갑게 애정표현 할 줄 모르는, '네가 알아서 해라' 무심한 방임형 스타일인 나의 엄마가 기본인 줄 알고 살던 나였다. 친구의 엄마가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에, 나는 영문을 몰라했다.
"눈물? 왜??"
"뉴진스? 그래, 그 맘 땐 여자 아이돌이지. 좀 더 있어봐라. 남자 아이돌에 빠지게 돼있다니깐."
중2 큰 아이가 초6 동생에게 거드름 피우며 하는 말이었다. 큰딸은 NCT를 좋아하는데, 나는 전혀 문외한이다. 내가 어릴 적 HOT에 열광했던 때, 온 가족이 노래방에 가면 부모님은 처음 듣는 가수와 노래에 멍하니 바라보던 상황과 정확히 똑같은 상황. 그래, 아이돌에 열광할 때지. 이해해 주는 마음을 가진 나는 너그럽고 현명하며, 깨어있는 엄마라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그러나, 이건 또 다른 문제다. 서울과 ktx로 2시간 거리인 대구에서 고척돔까지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내가 중학교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럼에도 마냥 반대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스스로 계획 세워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 때는 신나게 노는 아이인 걸 알기 때문이다. 알뜰살뜰 용돈을 모아 정가에 훨씬 얹어진 금액을 주고 티켓을 양도받는 아이를 보며, 천지개벽한 세상을 느낀다.
그래! 이번 기회에 온 가족 서울 나들이 가자! 하고, 남편의 운전으로 콘서트 경험 시켜주러 다녀왔으나,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중2 2학기 기말고사를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번엔 남편도 운전하기 싫은 눈치다. 친구랑 ktx 타고 다녀오겠다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 정말 겁도 없구나!
"엄마, 뭐가 걱정이야? 지도 앱에 가는 방법 다 나오는데, 겁날 게 뭐 있어? 뭔 일 있으면 전화하면 되지."
전화하면 엄마가 짠~ 하고 나타나기라도 하니? 대범한 아이 앞에서 움츠러드는 건 오히려 엄마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엄마가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아이의 표정에 입이 떡 벌어지는 내가 이상한 건가? 스마트폰이 손안에 있으니, 내비게이션, 지도, 예약, 전화 등을 활용하면 길을 잃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비상 상황이 생길 우려가 없다면 없는 세상이긴 하다. 손전화는커녕 삐삐도 없던 30년 전 나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본다. 지방광역시의 도심으로 친구와 버스 타고 놀러 갈 수준은 되었으나, 그 시절 서울은 부모님과 같이 가는 것도 연례행사였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세계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순간 와닿았다. 현재의 스마트한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겐 세상이 손바닥 안에 보이는 느낌인 것이었다. 길 잃을 염려도, 엄마를 잃어버릴 염려도, 휴대폰 하나, 카드 한 장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모양이었다.
같이 간다는 친구의 엄마 연락처를 물어 조심스레 나의 불안을 전했다. 전학 오기 전 청주에서 같이 팬심을 키우던 친구 역시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엄마는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보낸다고 했다. 오송역에서 서울까지는 1시간 거리라 가족끼리도, 혼자서도 종종 대중교통으로 다녀본 모양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친구 따라 고척 보내기를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대구 출발-오송 합류-서울 도착]하는 ktx 좌석을 친구와 나란히 예매해 주었다. 돌아올 때는 남편이 올라가서 ktx 막차로 내려오기로 했다.
ktx를 타러 역까지 바래다주는 길,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도 있었다'부터 시작해서, 전광판과 티켓에서 열차번호 확인하고, 플랫폼부터 열차 칸, 좌석번호 확인까지 주지 시키며, 나는 아이보다도 더 불안을 마구마구 표출하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내내 연락하고, 인증샷도 찍어보내라고 신신당부한 후 열차에 앉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차했던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제 어른스러운 얼굴의 아이가 천진하게 손을 흔들던 창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열차의 꽁무니가 내 시야에서 멀어지며 빠르게 작아지는 순간, 문득 친구의 엄마가 생각났다.
이거구나! 내 품에서 이렇게 훌쩍 가버리는…
어느새 내 키만큼 커서 눈높이가 같아진 딸. 이젠 엄마보다도 더 겁 없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엄마가 놓아주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성큼성큼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내 눈에서 흘러나오는 이 눈물은 도대체 어떤 감정일까. 첫 재롱잔치 때 귀여움과 나란히 다가오던 벅찬 감격?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제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에 대한 아쉬움? 아니다. 아쉬움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 중에 이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할 단어를 찾는 것이 가능 키나 할까?
대학로와 홍대거리까지 야무지게 구경하고 콘서트에서는 옆자리 중국인과 소통하며 신나게 즐기고 안전하게 돌아온 딸의 한마디.
"엄마가 겁줘서 괜히 쫄았었잖아. ktx도, 지하철도 가뿐하던데?"
겁도 없다고 걱정했던 아이가, 첫 도전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돌아오니, 그 기특함 또한 말할 수 없이 컸다. 우리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다 키웠네, 하고 감격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큰 도전을 하는 본인도 부담감이 있었는지, 다녀오기 전에도, 후에도 투정 없이 공부해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아낸 아이는 스스로도 흡족해했다.
"엄마, 갔다 오니까 공부도 더 잘돼. 내가 이번에 진짜 느낀 게 많다니까?
아이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나에게는 어쩌면 세상을 두렵게 바라보던 어린 내가 투영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달리 세상을 안전하게 바라보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끼며, 나에게 결핍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어두운 뒷골목도 있고,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처에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두운 면과 두려움이 앞서면 세상으로의 도전을 가로막게 되므로 안전하게 나아갈 만한 세상임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 이래서 사춘기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를 돌아보고 나도 키우는 역할도 하는구나! 아이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키우고 있음을 느낀다.
친구의 엄마가 흘렸다는 눈물의 맛을 나도 이제 안다. 친구의 입을 통해 몇 개의 단어로 전달된 그 감정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내 품에서 날갯짓을 퍼덕일 때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서야 나에게 온전한 느낌으로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나보다 1,2년 늦게 결혼해서 아이들 나이도 그만큼 차이가 나는 친구와는 지금도 가끔 안부 통화를 하며 지낸다.
정말 많은 것에서 비슷한 친구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이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