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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Dec 22. 2023

동생의 크리스마스 동심은 지켜주자. 응?

무신론자인 우리 가족에게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건만, 어쨌거나 어느 집이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크리스마스는 평범하게 그냥 보내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이 올해에도 생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1년을 묵혀 둔 트리를 야심 차게 꺼내고 함께 종이접기며 만들기를 해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했더랬다. 큰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는 엄마도 아이도 조금 시들해졌는데, 아직 어린이인 둘째에게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는 게 사실이다.




아이가 2학년이었던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5년 전이다.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애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말이야.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는데?"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은 핑핑 돌아갔다. 눈치 빠른 저 녀석은 엄마의 눈동자 흔들림까지 감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멈칫해서도 안되고, 진실여부를 말해줄 것인지 번개같이 판단해서 자연스럽게, 혹은 감쪽같이 말해야 한다.

'결정! 이 녀석 아직 긴가민가하고 있군.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에이~뭐래니? 이거 봐봐~ 산타 할아버지가 그저께 핀란드에서 출발했다고 뉴스에도 나오던데?"


고마운 기자님. 덕분에 뻔뻔해질 수 있었던 나.


어린이 동심을 위한 뉴스 기사를 쓰는 기자님이 있다니. 아이는 엄마가 들이미는 기사를 읽고는 그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감쪽같이' 받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다음 해 3학년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아이에게 1년이라는 기간은 어른의 기준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간인 것 같다. 엄마의 뻔뻔한 거짓말을 아직도 믿고 있을 수준은 아닐 것 같기에 이실직고해야겠다 싶었다.


"있잖아...... 학교에서 애들이 산타할아버지 의심하고 그러지?"

"응! 수빈이가, 산타는 있어! 그랬더니 서연이가, 야! 바보냐? 그걸 믿어? 했었어."

 

그래, 우리 딸, 친구들한테 바보 취급받을 순 없지. 사실은 말이지...... 산타는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우리 집 장녀는 10살 크리스마스에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둘째의 동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타의 비밀을 일찌감치 알게 된 친구들은 다들 둘째인 것을 알기에.


"그런데 말이야. 산타가 사실은 엄마아빠였던 걸 서윤이한테는 비밀로 해줄래? 우리 서윤이에게도 산타의 비밀은 10살 때까지 지켜주자. 응?"


막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엄마와 큰 딸의 작당모의.


"서윤아, 그거 알아?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 타고 핀란드에서 출발했대!"


동생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신나게 하는, 녀석의 시치미 뚝 떼는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1학년 동생에게 호들갑 떨며 이야기하다가 엄마랑 눈이 마주치자, 눈을 찡끗한다. 10살짜리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예외적으로 동생에게 거짓말해도 되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이 상황을 200프로 활용할 줄 아는 악동 같은 녀석. 엄마와 둘만의 비밀을 가지게 된 즐거움이 저렇게도 클까. 우리 집 막내의 동심은 그렇게 보존되다가 언니와 같은 시기 10살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집콕하던 해의 크리스마스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집에서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열었었다. 스테이크와 카나페, 샐러드 등으로 식탁을 꾸미고, 연례행사로 꺼내는 와인잔 두 개를 꺼내, 두 딸은 콜라컵을 들어 건배! 집 안의 전등을 모두 끄니 크리스마스트리 불빛만 반짝반짝하며 멋진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남편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다가 캐럴까지 틀자, 그야말로 화룡점정. 분위기 제대로다.


산타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5학년 때 큰 아이가 학교에서 쓴 일기장을 몰래 본 적이 있다.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파티를 여는데, 나는 그 파티가 너무 좋다. 엄마아빠는 와인을 마시고, 맛있는 음식과 트리와 함께 하는 파티다. 크리스마스가 정말 기다려진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 그날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얼마만큼의 행복으로 기억되었길래, 저런 글이 나올 수가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준비 중이다. 집에 와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스테이크용 한우를 장바구니에 넣고, 카나페와 초밥, 샐러드 재료를 체크하며 올해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상상한다. 며칠 전에 식탁 옆면 벽에 전구 트리는 설치해 두었고, 어제 둘째가 학교에서 만들어 온 크리스마스 리스도 그 옆에 걸어두면 되겠군. 중1, 초5가 된 두 딸의 산타는 이제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가 또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5년쯤 후에는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친구를 찾아갈 것이니, 함께할 수 있을 때 많은 추억을 쌓아놓아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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