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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Jan 05. 2024

새로운 우주를 발견했다

꽃이 귀하던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조화 꽃병이 하나 있었더랬다. 출처는 알 수 없다. 기다란 개나리 몇 줄기, 빛바랜 듯 주황이 섞인 해바라기, 너무 새빨간 장미 등등, 화려한 듯 생기 없는 조화 꽃이 그 시절엔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피아노 조율 기사가 방문했던 날이었다. 피아노 위에 있던 꽃병을 내려놓은 김에 방바닥에 주저앉아, 꽃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며 꽃꽂이 놀이를 했다.


"어린아이가 꽃꽂이를 참 잘하네?"


조율하던 기사 아저씨가 나를 보고 내뱉은 칭찬 한마디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꽃꽂이를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나. 또, 피아노 조율하는 남자가 꽃꽂이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나. 그런데, 그 기억이 이렇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나에겐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뜻이겠지. 칭찬이 고픈 아이에게 메마른 땅의 보슬비 같은 한마디였을까?


의욕적으로 새로운 걸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꽃꽂이였다. 흔하다면 흔하고, 식상하다면 식상한 과목이긴 하다. 꽃 사는 돈이 제일 아깝다고 생각했던 가성비녀가 언제부턴가 꽃을 보니 너무 좋더라.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든 생각은 '여자는 역시 꽃인가'가 아니고, '늙었구나'였다. 어르신들 옷차림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산에 가면 단풍 물결이 아니라 등산복 물결이라더니, 꽃이 좋아지는 걸 보니 늙었나 보다 싶었다. 일주일에 꽃 한 다발씩 가져오면 눈 호강, 마음 호강, 일석이조겠지 싶어 무심히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강좌를 신청했다.


첫 수업의 어색함과 뻘쭘함을 장착한 채로 자기소개를 마친 신규 수강생 4명은, 기존 수강생들의 아우라를 우러러보며 쭈뼛쭈뼛다. '생활꽃꽂이'라길래 취미 삼아 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선과 구도의 미학인 동양꽃꽂이 수업이 아닌가.  꽃의 길이는 화병의 길이에 너비를 더해야 하고, 꽂는 각도는 45도, 75도로 하고, 꽃의 높이는 같으면 안 되고...  세상에, 꽃꽂이에도 이런 공식이 있는 거였어?


얼마 전 읽은 강원국 작가님의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세계가 있다. 수천, 수만 가지 세계가 있다. 편의점, 커피숍, 제과점, 헬스클럽, 택시 운전, 등산, 바둑, 골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있다.

 모든 세계에는 저마다 우주가 있다. 밖에서 보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엄청난 사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첫 수업, 나에겐 대작!


새로운 우주를 발견했다! 밖에서만 보던 세계에 들어온 첫날, 나는 그들만이 알고 있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인위적인 염색 조화꽃이 아닌 보들보들한 생화꽃을 꽂으면서 어릴 적 그때가 생각난 것은, 나에게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굳이 떠올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첫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면서 남편에게 사진을 투척했다. 그동안 내가 시도한 분야는 뜨개, 전통매듭, 유리공예, 글쓰기 등등 많았지만 남편의 반응은 항상 무덤덤했기에 말 그대로 '옛다~ 구경이나 해'였는데, 남편의 반응이 웬걸?




왠지 백종원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충청도 토박이 남편. 그런 남자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이야. 여태껏 살면서 가장 큰  호들갑 칭찬이 아니었나 싶다. 이 남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 기법을 쓴 게 아닐까 잠시 상상했다가, 이왕 치솟은 광대뼈의 고도 유지를 위해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상치 못한 남편의 한 마디에 '꽃집 주인'을 상상해 보며, 옆사람의 반응이 얼마나 큰 역할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나의 그 어린 시절,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하는 공부 말고 내가 잘하는 그 어떤 것을 응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생각해 다. 다시 만날 일 없는 피아노 조율 기사가 아니라 옆에 있는 누군가의 지속적인 응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해내지 않았을까.


내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우주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남편과 같은 호들갑을 내가 장착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아이들 어릴 때 하이톤의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어줬던 엄마는 어디로 갔나. 다 컸다고 이제 조곤조곤 꼰대, 버럭 고함쟁이, 잔소리 대마왕 엄마만 존재한다. 자기반성 중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변한 게 아니다. 내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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