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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를 장착하는 방법

수영이 채워주는 '나 보고서'

by 김글인 Dec 27. 2024

두 달째 수영 강습 중이다. 앞사람이 먼저 출발할 때 유심히 살핀다. 아주 유연하게 팔을 돌리면서 고개를 젖혀 숨 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시 반대 팔을 돌린다. 와, 정말 잘한다! 그다음 사람이 출발한다. 뭔가 콕 집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뭔가 자세가 다르긴 하다.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팔을 돌리며 호흡도 규칙적으로 잘하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저 사람이 고개 돌리듯이 나도 잘 돌리고 있는지 누가 영상이라도 찍어뒀다가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번엔 내 차례다. 물 먹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한 상태로 얼굴을 물에 담근다. 왼팔이 다 돌기도 전에 오른팔이 돌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흡하려고 입을 열면 물이 같이 들어온다. 청양고추의 매운맛을 몇 번이나 느끼며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숨이 가빠온다. 이제 안면이 트여 조금 친해진 뒷사람이 건네는 한마디.


"팔 돌리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요."

"누가요? 제가요?"


숨 쉬느라 허겁지겁, 수영장 물의 평균 75리터는 소변이라는, 그 물을 얼마나 들이켰는지 배가 부를 지경인데 말이다.

내 순번을 따라 앞사람을 종종 따라가면서 보니, 능숙하게 호흡하던 사람이 코를 쥐어 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허! 물 밖에서, 멀리서 우아하게 보이던 백조 한 마리도 수면 밑에서는 쉴 새 없이 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 사람도 제각각의 어려움이 있구나. 왠지 남의 떡은 커 보이고, 나 빼고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남들은 다 출중해 보이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 버리는 인지오류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 세상도 있다. 수면 위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 나를 괴롭힐 이유가 없다.






수영을 제안했던 언니와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특성을 또 하나 자각했다. 나는 수영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한 단계 한 단계 새로운 스텝이 올라갈 때마다 많든 적든 긴장을 했다. 잘할 수 있으려나,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동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등등 다소 초조하게, 약간은 경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보고 내 동작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했고, 비교적 내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언니는 아직 호흡도, 발차기도 자세가 안정되지 않아서 물로 배를 채우고, 선생님의 핀잔도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더 잘하려고 고민하지도 않고, 생각만큼 안 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 듯 보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상이 눈앞에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하게 생긴 외계인을 보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저렇게 마냥 즐거울 수가 있지? 잘하고 싶지 않나? 뒤쳐지고 있는 상황에 전혀 스트레스받지 않는 건가? 나는 즉각 자기 방어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해서 무슨 발전이 있겠어. 안되면 따로 연습을 더 하던가, 사람이 노력해서 발전이 있어야지. 수영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물에 몸 담그러 오나?’


'나 보고서'에 한 줄을 추가한다. 나는 발전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큰 편이구나! 오늘도 물총 세례와 함께 선생님의 핀잔을 혼자 다 받아낸 그녀는 여전히 마냥 해맑았다.


“대충 해! 굳이 25m 끝까지 갈려고 애쓸 필요 뭐 있어. 수영장 다니고 있으면 됐지. 배우고 있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해.”


나는 상급 레인에서 유연하게 몇 바퀴씩 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 수영의 미래를 찬란하게 꿈꾸고 있었다. 현재의 나에게 수영은 그 미래를 위해 정복해야 할 대상, 잘하기 위해서 애써 노력해야 하는 무언가였다. 그래서 현재의 수영은 '즐거운 것'이기보다는 '정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돼버렸다. 반면, 그녀에게 수영은 앞으로 계속할지, 몇 개월 후에는 마스터하게 될지 등의 미래의 것이 아닌 듯했다. 단지, 현재에 즐거운 것, 만족스러운 것, 그뿐이었다. 차이점은 즐겁고, 만족스러운 것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


경쟁이 기본으로 깔려있는 학교, 직장 문화를 거쳐 오면서, 나는 경쟁에서 우위에 있고 싶어 하는 나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구나. 그러나 꾸준함이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는 영역일수록 자기만족의 기준을 내릴 필요가 있겠다는 깨달음에 다다랐다. 하루하루 나를 채찍질할 게 아니라, 하루하루 나의 만족감, 성취감을 소소하게 채워나가면 내가 그리는 더 큰 모습은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 모든 것에 배움이 있다는 말은 진리다. 나의 강박적인 생각을 시원하게 한방 먹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수영이 나에게 준 깨달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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