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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Aug 03. 2024

치아바타와 발사믹

나 정의내리기

얼마 전 나의 생일날, 가족 외식 메뉴를 고를 때였다.


"뭐 먹으러 갈까? 당신 생일이니까, 당신 먹고 싶은 걸로. 막창?"


나는 지금 막창이 먹고 싶은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막창인가? 글쎄... 뭐, 막창이어도 괜찮고, 남편이 좋아하는 삼겹살도 좋고, 애들이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괜찮다. 내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메뉴 정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 건 물론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다수에게 만족을 주는 메뉴가 가장 좋은 건 나만의 습관인가?


작년 내 생일이던가 가물가물한 어느 날, 그날따라 메뉴를 정하는 데 남편이 나의 의사를 집요하게 물었다.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와중에, 맛있게 먹었던 메뉴 중 하나로 내뱉은  한 마디.


"막창?"


그날 이후로, 남편의 뇌리에 박힌 모양이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막창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같이 산 15년 동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반복해서 말한 적도 없고,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남편이 먹고 싶은 것, 아이들이 잘 먹는 것 위주로 지내왔으니, 공식적으로 물어본 질문에 나온 대답을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남편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 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을 챙겨주겠다는 마음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15년 동안 우리가 함께 막창을 먹어본 횟수는 한 손에 꼽아보려 해도 손이 떨려올 만큼 적은데, 그 후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표정으로 '엄마가 먹고 싶은 것=막창'이라는 공식이 생겼으니,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이쯤에서 나를 한번 들여다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지? 스테이크? 막창? 된장찌개? 파스타? 삼겹살? 제일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하나만 콕 집어 말할 수 있지? 이것도, 저것도 다 맛있고 두루두루 좋은데? 남편의 베스트메뉴는 삼겹살이고, 큰 아이가 애정하는 메뉴는 비빔면, 둘째는 게살볶음밥이다. 나는 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못 고르는 걸까? 못 고르는 걸까, 안 고르는 걸까? 최애 음식을 못 고르는 나는 왠지 이상한 사람 같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란 사람은 먹는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인 걸까? 요리하는 데 집중해 본 적은 있어도 음식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이토록 집중해 보긴 처음이다.


'나'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해 보는 이 시간이 생소하기 느껴진다는 사실에 다시 집중해 본다. 나란 사람에 대해서 정의 내려 본 적이 없구나. 세상에 나란 존재를 중심에 딱 세워놓고 살아온 게 아니라 나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주변의 사람들, 주변의 말들에 휩쓸리며 살아왔구나. 근래에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해보고 있다.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감동하는 것들은 어떤 건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뭔지.


아이들과 부대끼며, 참을 인자를 새기고 도 닦는 방학 중에 자유시간을 맞아 외곽의 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 잔과 함께 무심코 트레이에 골라온 치아바타와 발사믹을 보며 나를 정의 내리는 단어 몇 개를 추가해 본다.


'아! 난 발사믹에 찍어먹는 치아바타 빵을 좋아하는구나!'

'아! 하늘, 호수, 산이 보이는 풍경을 좋아하는구나!'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


'나 정의 내리기'를 의식적으로 계속 쌓아나갈 때, 저기 우뚝 서 있는 산처럼 태산 같은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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