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생뚱맞은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볶음춘장? 2kg?'
연이어 도착한 중화면, 돼지 목살 등등의 주문자는 남편. 이거 실화냐? 춘장이... 2kg?! 돌쟁이 머리통 만한 춘장 깡통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이 남자가 중국집 차릴 일 있나, 식당에서나 구비할 만한 식자재 2kg가 웬 말이냐.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 손에는 원터치 캔이 아닌 대형 캔을 열기 위한 다이소표 캔따개가 들려있었다.
지금은 여름 방학 중이고, 삼식이 엄마 생활에 지쳐있는 내가 주말에 '외식하러 나가자!' 외치면, 사춘기 두 딸은 흘끗 보며 말한다.
"그냥 집에서 먹으면 안 돼?"
엄마 속도 모르는 야속한 녀석들. 배를 곯아봐야 ‘아~ 감사히 먹어야겠구나’ 할 텐데, 현실의 풍요로움은 그런 바람직한 사고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같은 메뉴를 연달아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을 요리에 취미도 없는 내가 버텨내려면, 간간히 배달을 이용하는 건 당연하고, 늦잠 자고 일어난 날은 하루 두 끼로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하며, 컵라면 끓여 먹을 자유를 못 본 척하는 신공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되면 더운 날씨를 핑계로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외출도 거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끼니를 해결하는 신공보다도 불끈불끈 터져 나오는 내 안의 몬스터를 잠재우는 인내심이 먼저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주말이 화려했다. 여름에도 계곡으로 캠핑을 가거나 체험활동을 하러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아가고, 삼식이 엄마로 변신해야 하는 방학이 되어도 주는 대로 먹고 나가자는 대로 나가는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난 후에는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기거나, 책을 보는 등 4인 가족이 집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각자의 주말 휴식을 즐기고 있으나, 다음 식사는 뭘 먹나 고민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 방학이 후반에 접어들수록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에 나의 이성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미 두 끼를 집에서 먹고 난 지난 주말 저녁,
“ 먹으러 나갈까?
“그냥 집에서 먹으면 안 돼?”
“그럼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 먹을까?”
“난 그냥 비빔면 끓여 먹을래. “
자기 의견이 생긴 아이들은 내 맘대로 먹이기도 어려운 데다가 남편도 본인의 운동에 심취해 있느라 시큰둥한 걸 보고, 내 안의 몬스터는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왜 주말도 없는데? 밥 먹을 궁리는 왜 나만 해야 하는데? 블라블라~~
남편은 군생활 동안 안 해본 요리가 없다고 했다. 짜장, 카레는 물론이고 육개장에서 김장까지. 반면 나는 계란 프라이나 라면 외에 요리라곤 해본 적 없이 결혼했으니, 주부가 된 후 요리를 떠맡은 이 역할 분담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간간히 수육을 삶거나 스테이크를 굽는 식으로 이벤트성 실력발휘를 했던 남편이, 이번 주말에 짜장면을 만들어주겠다며 주문한 재료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좋았어! 자리를 맞바꿔 저 남자가 요리하는 동안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여유롭게 쉬어주겠어, 마음먹었으나, 궁중팬은 어디 있는지, 큰 그릇은 어디에 있는지,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어렸을 때, 나의 아빠는 요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 오늘은 아빠가 맛있는 거 해줄게.‘ 로 시작하는 단 한 번의 기억은, 그 당시에도 ‘오늘은 내가 ㅇㅇㅇㅇ 요리사!’라는 광고로 유명했던 짜장라면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단 한 번, 짜장라면으로 큰소리쳤던 아빠. 언젠가 딸들과 짜장라면을 먹으면서 어릴 때의 에피소드를 웃으면서 이야기했었는데, 오늘 남편의 짜장면을 보니 어릴 때의 기억과 오버랩되었다. 훗날 우리 딸들은 아빠의 짜장면을 어떻게 기억할까. 짜장라면도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제대로 된 짜장면은 더 멋진 아빠의 요리로 추억되겠지.
드디어 완성된 짜장면을 먹으려고 다 같이 앉은자리에서 남편은 세 여자의 표정을 흘끗거리며, 좀 짜게 됐다느니, 불맛이 안 나서 아쉽다느니, 자기 방어를 하고 있었다. 딸들은 ‘나쁘지 않은데?’, ‘맛있네!’ 조잘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눈치와 성숙의 단계에 이제 막 접어든 녀석들은, '엄지 척' 까진 아니더라도 흔치 않은 아빠의 호들갑에 반응할 줄은 아는 녀석들이었다. 좀 짜서 물을 계속 들이켜긴 했으나 나 역시 맛있게 먹었다. 어찌 됐든 한 끼를 해결해 준 남편이 아닌가. 마지막 야채까지 말끔하게 먹어치우느라 배가 터질 것 같았다.
2kg 춘장 깡통에서 오늘의 짜장면에 들어간 건 고작 4스푼. 남편은 나머지를 소분해서 얼려두면 된다며 지퍼백에 넣기 시작했다. 남은 춘장을 들여다보니 40스푼은 될 것 같다. 저걸 다 먹는 데는 1년도 모자랄 것 같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소분하는 걸 거들고 나서 설거지를 시작하면서 또 목구멍에 걸려있는 한 마디, 설거지 역할은 안 바뀌는구나, 그러나...... 참아야 하느니라. 재료비를 따져보니 사 먹는 게 낫겠다, 그러나...... 참아야 하느니라.
웬일인지 말수가 줄어든 것 같은 나를 알아차린 걸까, 남편이 말한다.
“앞으로 주말에는 한 번씩 짜장면 해줄게!”
약속 꼭 지켜.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어쨌든 오늘 셰프 역할을 해준 남편 덕분에 내 안의 몬스터는 온순해졌다.
’ 그래, 고생했어. 춘장 2kg는 오늘 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