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참교육 [교사의 뒷담화]

by 복희

이번 뒷담화는 저와 같이 혁신학교에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분들은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혁신학교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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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가 공표되던 시기부터 혁신학교의 출현과 그 시대의 마감에 이르기까지, 학교 교육의 흐름과 변천사를 구체적인 사건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25년간 학교 교육의 흐름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느라 교육계 담론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랬구나 싶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잊고 있던 기억들을 소환하며 각 이슈들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여러 교육 현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의문을 품지 않고, 묵묵히 성실한 수비수로만 살아왔다는 반성도 들었다. 또한 체벌 교사로서 그 시절 나를 거쳐간 아이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도 함께 느껴졌다.


나의 첫 번째 혁신학교는 개교 2년 차에 ‘탑다운 방식’으로 지정된 학교였다.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었기에 교사들 사이에 혁신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고, 자연히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학교의 방향은 결국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결정되는데, 혁신을 실현해야 할 구성원들에게 철학과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은 곧 ‘혁신 없는 혁신학교’라는 역설을 의미했다.


학교 측은 이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연수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연수들은 수업에 대한 성찰 을 심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학생 중심 수업 설계’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활동 중심 수업 사례는 겉보기에 활기차 보였지만, 그 안에 진정한 ‘배움의 깊이’가 있었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나 역시 이러한 수업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바꿔보려는 실천적 시도에는 게을렀다. 좋은 수업 혁신 모델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수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설계할 동료도, 주체적인 노력도 부족했음을 고백한다. 매일 교무실에서 교실로 ‘데드맨 워킹’을 하면서도 수업을 나누는 것이 마치 장기기증처럼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다. 결국, 기회는 왔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은 그 기회를 나는 붙잡지 못했다.


5년 후,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 두 번째 혁신학교에 오게 되었다. 이번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해 세워진 학교였고, 공동체 분위기 또한 훨씬 민주적이고 따뜻했다. 학생들은 예의 바르고 성 실했으며, 행정실의 지원까지 무언가 시도하려면 정말 못할 일이 없어 보이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이곳 역시 수업 나눔은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선생님과 특정 교과 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업은 여전히 ‘각개전투’였다. 민주적 학교 운영과 학생 자율성 신장을 위한 노력 은 활발하지만, 정작 교사 정체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업’에 대한 공동의 고민과 환경 조성은 상대 적으로 소홀했다. 교사들은 업무에 지쳐 있었고, 수업에 대한 성찰은 퇴근 후 ‘개인 과제’가 되어버렸다. “바쁜 꿀벌은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 ‘겨를’을 애초에 가지지 못했거나, 혹은 막상 시간이 주어져도 고민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곳의 혁신학교에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혁신의 성과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난 동료 교사들 덕분이다. 좋은 수업을 위해 매일 고군분투 하던 그들의 태도는 나에게도 교사로서의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나를 다시 교사답게 만드는 좌표이자, 지치지 않고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나에게 혁신학교 경험이란, 시스템과 제도보다는 사람을 통해 성장하고 반성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제도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좋은 교사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 교육에 대한 성찰과 진단을 요구하는 질문 앞에서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괜찮아서인지, 공교육의 문제에 대해 내가 둔감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든다. 그러나 지금의 공교육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은 늘 변화를 멈추지 않는 과정이고, 코로나 팬데믹 시절 누구보다 성실하게 대처했던 교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나에게는 여전히 있다. 나는 여전히 교사의 수업이 바로 서면 학교도 바로 설 수 있다고 믿는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배움의 효능감을 느끼고 성장의 경험을 쌓는다면, 생활지도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공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라는 구조적 병폐에 있다고 본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앞에서 그 어떤 교육적 가치도 무용지물이 되고, 그 경쟁에서 밀려 난 학생들은 패자부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낙오자가 되어 좌절하거나 문제행동을 일삼으며 스스로를 파괴한다. 본말전도의 상황이다. 학벌주의라는 꼬리가 공교육이라는 몸통을 흔드는 현실, 그리고 대학 서열화와 ‘먹고사니즘’이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하는 사회구조가 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개혁한다 한들,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경제적 불안정과 계층 재생산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교육 정상화는 요원한 일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교육의 토대가 되어야 할 가정교육의 약화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적당한 좌절 과 결핍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관계 맺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서적 돌봄과 가치관 교육이 결여된 채 성장한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일으키는 일탈 문제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커졌다. 그러나 정작 그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부모들은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교육의 두 주체에 의해 추락하는 교권, 그리고 하찮은 월급 과 불안정한 연금 체계는 공교육으로 유능한 인재가 유입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는 결국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공교육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해외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서 충분히 그 미래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 십 년 넘게 학생들을 만나고 있음에도 ‘진정 한 교육’이나 ‘교사로서의 나’에 대해 깊이 성찰을 해보지도,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 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첫 번째 챕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느끼는 ‘참교육은 복수’라는 표현은 글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학 교에 근무하면서 왜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친구를 일러바치러 교사에게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자기의 잘못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제가 먼저 그랬는데요?’ ‘저만 그런 거 아닌 데요? 세상 억울한 얼굴로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투덜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참교육은 무엇이지? 대학 입시를 위해, 의대를 목표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대 반에 들어가고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4세 고시, 집중력 향상을 위해 ADHD 약까 지 먹는다는 학생들도 있는 현실에서 학교는 왜 다니는지,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 육은 무엇이지 혼란스럽다. 참교육은 도대체 무엇일까, 질문만 남기고 답을 찾지 못하겠다.


신규 발령 후 3년의 중학교 근무를 마치고 전입한 학교가 혁신 학교였다. 그 당시 ‘혁신 학교’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봤고 그 의미나 방향성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첫날 연수 때였나, 지역사회의 요구로 학교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부터 혁신 학교로 지정되었고 학생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소통과 협력의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학교라는 설명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 난 ‘와, 학교가 지역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교육활동을 하다니! 좋은 학교네!’라고 막연 히 감탄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전 학교는 교장이 곧 법인 시골 학교였기 때문이다. 일방적 인 지시와 통제가 익숙한 환경에서 근무하다가 온 나로서는 혁신 학교의 첫인상은 ‘대단하고, 멋있다.’였다. 회의 시간에 자유롭게 발언하는 교사들의의 모습도 낯설었고 학생들에게 많은 결정권을 주고 학생회가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해나가는 모습도 신기했다. 뭐 시간이 흐르며 몇몇 교사들에게 실망하고 학생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혁신 학교에 근무하면서 나는 수업에서 혁신의 방향을 고민하거나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디자인해 보려 노력하지 않았다. 내 수업은 단지 학생들이 농어촌 전형으로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춰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답을 잘 찾는 문제풀이 연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혁신 학교 담당 부장님이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구색만 맞출 뿐, 내가 내 수업을 바꾸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지금의 네 번째 학교까지 나는 13년째 혁신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 다. 세 학교에서 5명의 교장을 만났고 되돌아보니 혁신 학교의 방향성과 실제 모습은 누가 학 교장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정책 아래에서도 학교장의 철학과 리더십 스타 일, 구성원과의 소통 방식에 따라 학교 분위기나 조직 문화, 교사들, 학생들의 만족도는 천차 만별이었다. 나 또한 학교장의 리더십에 따라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혁신 학교의 경험은 그리 특별하지도 감흥이 크지도 않았다. 13 년째 혁신 학교 근무라 너무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고 ‘혁신 학교라고 해서 별다를 건 있나?’ 라는 내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변화가 혁신 학교에서의 근무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교육 경력이 쌓여 생긴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 년의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내 수 업을 통해 학생들이 반드시 얻어갔으면 하는 목표를 분명히 세운다는 것이다. 올해 내가 정한 목표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 속에서 학생들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치를 조금이라도 올려주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요즘 사회를 보면 아이들이 멀쩡하게 자라기조차 힘든 시대가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예전처럼 밖에서 충분히 뛰어놀며 몸을 움직이고 친구들과 부딪히며 배우는 일상이 줄어들었다. 대신 입시 공부와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어릴 적부터 정서적 불안, 분노, 무기력과 같은 감정에 빠져있다. 미디어 중독으로 깊은 사고도 할 수 없고(1분짜리 숏츠 영상만 보다 보 니 5분짜리 유튜브 영상 보는 것도 힘들어하고) 신체활동 부족은 뇌의 균형 잡힌 발달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게다가 학교 현장은 서비스화된 교육 풍토와 아동 학대에 대한 우려로 제대로 된 훈육을 할 수 있는 어른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답은 찾지 못하고 고민의 늪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학군지와 학원가가 집값을 결정하는 대한민국에서 입시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어떤 시스템 이 교육 현장에 들어온들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요즘 IB 교육에 관한 공문을 보면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겉면을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또 하나의 유행이 시작 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듯한 교육 철학을 표방한 채 결국은 교사를 갈아 넣어 겉으로 들어나는 성과만 만들어내는 구조, 그렇게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2022 과학과 개정 교육 과정은 학생의 삶과 연계하여 유의미한 맥락 속에서 배운 내용을 활 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핵심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 매체를 활용하고 교수학습 방법의 다양성을 꾀하여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한 수업 설계를 위하여 질문과 탐구가 일상화되는 수업을 구상하라고 한다. AI 시대는 질문만 하면 무엇이든 답해주는 시대이다. 이제는 정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답변을 이끌어내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지 않을까? 즉, 좋은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개정 교육 과정 연수를 들으며 앞으로 학생들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게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교육이 지금보다는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AI에게 ‘우리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이렇게 물어보면 어떤 답변을 해줄까?



교무실에서의 단상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소소한 이야기와 고민, 경험들이 잘 드러나 있어 좋았습니다. 저 역시 참교육과 가짜 교육에서 계속 고민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서늘하지만 담백한 용기가 선생님의 글을 통해 생겼습니다.


선생님이 거닐었던 그 교육의 광장에서 함께 했던 소통과 대안이 학교를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시켰고, 그때 함께 했던 고민과 나눔이 우리 교육을 보다 성장시켰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저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또한 새로운 이름의 학교 실험이 될 수도 있고, 마지막에는 결국 실패했다고 체감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고민과 변화가 좋습니다.


행복한 배움의 선행 조건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그 선택과 결과에 대해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성찰이 있는 배움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무이며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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