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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

by 김여생

부르르르.
아직 다 낫지 않았는지 아침엔 어깨와 날개뼈 사이에 오한이 온다.
수영장을 가고 싶은데,
오늘 수업이 있지만 패스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해가 창창해서 오랜만에 집안 정리를 시작해 본다.
아프다는 핑계로 집안 정리는 물론 고양이와도 많이 놀아주지 못해 새벽마다 한숨 섞인 고양이의 투정을 들어야 했다.
아침잠에 들어간 나의 고양이에게 따뜻한 남색의 극세사 담요를 살포시 덮어주니 사부작사부작 그 안에서 냥모나이트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두꺼운 플리스 집업을 입고는 창문을 열고 환기부터 시작한다.
집안 곳곳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닦고를 반복한다.
얼추 먼지 타임이 끝나면 창문을 닦고 돌돌이 타임이다.
지금은 고양이가 나이가 제법 들어 겨울이 돼도 털이 많이 빠지지 않는데 예전엔 탈모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털이 많이 빠졌다.
검은색 바지를 입는 날이면 돌돌이를 몇 장이나 사용해야지 외출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되.
몇 번의 호된 돌돌이 타임 이후론 털이 잘 붙는 재질보단 그나마 덜 붙거나 니트도 여러 색이 들어가 있는 털이 붙어도 티가 안 나는 제품으로 골라 구매하게 되었다.
그렇게 옷장이 완성되었는데 이젠 고양이의 털이 다른 계절과 별로 차이 나지 않게 빠지지 않는다.
부직포 숨숨 터널과 빨래를 돌돌이 하며 새삼 나의 고양이가 나이가 들었음을 느끼는 하루다.
오늘은 제법 컨디션이 좋아 이럴 때 모든 것을 해놓아야겠다 싶어 반찬을 후다닥 만든다.
과일과 야채를 씻어 프랩을 해놓고 멸치볶음과 계란말이와 야채를 듬뿍 넣은 카레를 해놓는다.
이렇게 해놓고 나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어 고민하다가 어느 한 유튜브의 도삭면 영상을 보고 눈이 트여 따라 했고 아주 성공적이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산책을 나갔다가 코에 홍수가 났는지 콧물이 앞을 가려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쉽지 않아.'
마음은 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데 마음과 몸은 하나가 아닌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깨끗이 씻으니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날 반겨준다.
서로 아주아주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고는 고양이는 사료를, 나는 간식을 먹고 함께 낮잠으로 향했다.
아플 땐 잘 먹고 잘 자고만 해도 반절은 나은 셈이다.
땀이 날정도로 자다가 눈을 뜨니 밖은 어두컴컴하다.
시간을 보았더니 꽤나 깊이 잤다.
옆을 보니 고양이는 만세 삼창을 하며 자고 있는데 배방구를 하고 싶지만 꾹 참고 바라만 본다.
참 별거 없지만 평화로운 하루다.
그저 매일 똑같이 흐르는 하루에 오늘은 예쁜 나뭇잎이 한 장 똑 떨어져 둥둥 흘러간 것 같다.
집순이의 매우 행복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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