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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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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Sep 14. 2022

죽음에 관한 기억(2)


처음 죽음을 목격했던 일은 워낙 어리기도 했고, 강렬했던 기억이라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할머니의 죽음은 애통해하지도 놀랍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 수학 시간이었다. 수업 도중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내어 책가방을 챙겨 얼른 집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집으로 갈 것도 없이 집에서 나를 태우러 왔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생각했다. 폐암 말기라서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수학 시간을 벗어날 수 있어서 기분이 살짝 좋기까지 했다. 정확하게는 앞으로 일주일간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할머니는 작은 아빠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어려웠다. 작은 아빠의 자식들은 할머니에게 친근하게 반말을 썼지만, 나와 동생은 할머니와 대화할 때마다 극존칭을 썼다. 할머니는 아빠보다 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다른 집 할머니들은 손녀가 울면 안아서 달래주던데, 할머니는 내가 울 때 단 한 번도 나를 달래준 적이 없었다. 괜히 작은아버지네 가족이 미웠다. 넓은 2층 집에 살면서 화목한 웃음소리를 내는 그 집이 할머니 댁이라는 생각보다는 꼴 보기 싫은 집으로 여기면서 살았다. 할머니는 마른기침을 자주 하셨는데, 오랫동안 다닌 동네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는 오진을 내렸다. 차도가 없어서 가 본 큰 병원에서 폐암 말기를 선고했다.

여태껏 살면서 담배는 입에도 대 본 적 없는 사람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가족들이 모두 충격을 먹었다. 폐암 선고를 받자마자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독한 약 때문에 머리도 점점 빠지고 특히 너무 말라버린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했다. 어른들은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할머니의 깡말라버린 모습에 가까이 가기도 징그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목에 구멍을 뚫어서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해야 했는데 그때는 너무 징그러워서 병실 안에도 잘 안 들어갔다.

병원에 입원한 시간이 길어지자 친척 어른이 안락사 의사를 물어봤다. 아빠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절대 안된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는 매일 병원으로 퇴근을 했고, 엄마도 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이 유일하게 멈춰있던 시간이었다. 단 몇 달. 첫 손주에게 평화를 선물하고 돌아가신 할머니.


태어나서 처음 가 본 장례식장이었다. 얼굴도 처음 보는 친척 어른들과 아빠의 회사 사람들. 고향 친구들.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인사를 많이 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는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장례식장에서 인사하는 나를 어른들은 계속해서 꾸짖었다. 심지어 생전 처음 보는 당숙이라는 사람은 나를 화장실 앞으로 데려가 이 집안의 장녀가 속 깊지 못하다고 호통을 치셨다. 당숙께 혼이 난 뒤부터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어른들을 봐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 때마다 간간히 슬픈 표정을 지어주면 그만인 곳을 나는 장례식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른 어떤 장소보다 연기력이 필요한 곳. 오히려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강아지 호텔에 맡긴 우리 집 개를 걱정하고 있었다. 슬픈 감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슬픈 감정도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를 땅에 묻을 때, 안락사를 반대하지 않았던 형제들이 관을 부둥켜안고 우는 것을 보는 게 싫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땅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울지 않았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본인이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면서 그렇게 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펑펑) 아빠가 우는 것을 다른 친척들은 보지 못하고 나만 본 것이 억울했다. 슬픈 기분은 아빠를 보고 든 것이지 할머니에 대한 슬픔은 아직까지도 없다.


장례식 내내 낯선 곳에 있을 우리 집 강아지가 너무 걱정이 되었을 뿐. 우리 집 개와 점점 떡져가는 내 앞머리에 대한 고민. 가끔씩 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뭘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죽음의 충격이나 슬픔은 상대가 나와 물리적으로 얼마큼 가까운 사이인지 –그것과는 별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의 당사자보다 남겨진 사람이 훨씬 더 불쌍할 때도 있는 것이었다.

그날 운전하는 아빠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봤다. 나는 평생 그런 구멍이 뚫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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