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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20. 2018

십자가 언덕: 가톨릭 신앙과 이교의 흔적 (2)

2017년 11월 4일

오늘날 리투아니아는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국가다. 하지만 언제나 '유럽에서 가장 마지막에 개종한 나라'라는 소개를 상당히 자랑스럽게 한다. 유럽의 지난했던 기독교화 과정의 끝을 장식한 나라이다.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연도가 1387년, 리투아니아의 황금기를 구가한 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과 그 사촌이자 폴란드 왕이 된 요가일라(Jogaila)가 함께 승인했다. 지리적으로 북동쪽에 치우쳐 전파가 늦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토속 이교 신앙과 문화가 끈질기게 남아서 독일계 기사단이나 서유럽 선교사들의 가톨릭 선교가 순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카우나스 자유로 가운데 당당한 비타우타스 대공

중세 유럽에서는 당연하게도 가톨릭 교인으로서 세례를 받아야 교황의 승인 하에 대관식을 하고 왕이 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 역사상 유일한 왕이 된 민다우가스(Mindaugas) 왕의 대관식이 1253년이었다고 한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가 전체가 개종하여 세례를 받고 교황의 승인을 얻은 왕국이 되었다. 당시 리투아니아 북서쪽에 리보니아 기사단 (Livonian Order)이 세력을 키우고 있어서, 이쪽도 교황의 승인을 얻은 왕국이 되어 대응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리보니아 기사단은 독일 기사단 또는 튜턴 기사단(Teutonic Order) 조직 일부고, 중세 내내 리투아니아 대공들과 얽히는 관계다.

빌뉴스 국립박물관 앞의 민다우가스 왕

사실 튜턴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고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약속의 땅'에서 패퇴한 살 길을 찾아 이곳으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교도 지역이었던 발트로 기수를 돌려 기독교 전파의 사명을 지속하는 역할로 침략을 한 셈이다. 독일계 기사단이니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발트 지역을 식민화하는 첨병이 되었다. 덕분에 민다우가스 왕도 개종을 했으니 기독교 촉진 효과는 있었던 셈이지만, 그 이후로는 개종한 왕이 하나도 없다. 정치적 필요성을 알았다 하더라도 로마와는 멀고, 바로 동쪽은 동방정교회의 영향권이고, 토속 이교 신앙이 뿌리 깊어 가톨릭이 유지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개종 여부는 교황청과 기사단을 상대하는 협상 카드 중 하나였고 실제 민간의 기독교 전파 속도는 매우 느렸다.

카우나스 강변 성모승천교회는 '비타우타스 대공의 교회'로도 불린다. 개종 후 헌정한 교회라 한다.

그 유명한 비타우타스 대공도 정치적 목적으로 가톨릭을 공식화했을 뿐 개인적인 개종은 끝까지 미루었다. 그도 왕이 되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 표면상 개종한 후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관식을 못하다가 최후에 배송 중이던 왕관이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이미 개종해서 폴란드 왕이 된 사촌 요가일라와 줄곧 경쟁 관계였고, 리투아니아 토속 신앙과 독자적인 문화를 보호하려 했다고 전한다. 가톨릭 개종이 진행되면서 이교 문화는 점차 가려졌지만, 문득문득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상징이나 습관들이 보인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성당에 다니면서도 옛 이교 분위기의 전통 장식과 축제를 즐긴다. 6월 말에 ‘성 요한의 날’이라는 축제일이 있는데, 기독교의 성자 요한과는 상관없이 낮이 가장 긴 날을 즐기는 이교 문화 축제라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장승 문화

토속 이교 문화 중에 마치 우리나라 장승과 비슷한 나무기둥 조형물이 있다. 비타우타스 대공을 포함하여 중세 영웅들, 전설적 인물들이 나무기둥으로 곳곳에 서 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분명히 기독교적 상징이지만 은근히 토속 형상과 닮아있다. 나무십자가는 십자가 언덕뿐만 아니라 동네 입구, 길가에도 있고, 많은 경우 예수님이 같이 조각되어 있다. 나무로 조각한 예수님은 서유럽의 부드러운 곡선보다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각이 졌고, 토속 느낌이 강하게 섞인 네모 형태이다. 봄맞이 장터가 서면 삐죽삐죽한 마른풀을 색색으로 칠한 조화나 말린 꽃 장식 다발을 엄청나게 많이 판다. 우리나라 복조리 같은 봄맞이 장식인가 했는데, 부활절 시즌에 성당에 가져가서 뿌려주는 성수를 묻혀 오는 용도라고 한다. 부활절, 성당, 성수는 가톨릭이 맞지만 지푸라기 꽃다발로 복을 비는 습관은 다분히 이교적이다.

봄맞이 장터에 가면 다양한 마른 꽃장식 다발을 판다. 가톨릭과 이교적 문화가 공존하는 한 사례다.

리투아니아 이교 신앙은 확실하게 정리된 기록이 없다. 문자 사용 자체가 가톨릭 전파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고, 특이한 지형이나 높은 곳에는 제단 흔적이 있다. 카우나스에도 네무나스 강과 네리스 강이 합치는 두물머리 공원 꼭짓점에 옛 이교 제단 흔적을 복원해 놓았다. 강물이 합쳐지는 곳을 바라보는 위치에 돌로 만든 네모진 제단이 있다. 팔란가에도 해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아름다운 여사제 '비루테(Birute)'의 이야기가 전해 오는 제단이 있다. 이교 신앙을 지키며 제단을 섬기는 여사제였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중세 리투아니아의 케스투티스(Kestutis) 대공이 강제로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 아들이 바로 그 비타우타스 대공이니 대단한 어머니가 된 셈인데, 어쨌든 이교 신앙 여사제였다는 설정에서 문화적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빌뉴스 사랑의 여신 제단자리에 세웠다는 바로크 양식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

가톨릭 성당 중에는 옛 이교 제단이 있던 자리에 일부러 세운 경우도 많다. 위치도 좋고 상징성도 있으니 성당 건설이 여러 모로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빌뉴스 구시가에서 강을 따라 동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화려한 바로크식 장식으로 유명한 '베드로와 바울 성당'이 있다. 로터리를 끼고 있어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이 대단한 곳이지만 원래는 강변을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이었을 것이다. 밝고 화려한 내부와 조명을 비춘 외부가 안팎으로 예쁜 성당이다. 안내판을 보니 원래 이교 여신 중 '사랑의 여신 밀다(Milda)'의 제단이 있던 자리에 세웠다고 적혀 있었다. 이교 문화를 밀어내고 지난한 개종 과정을 거친 역사의 한 부분이다.

빌뉴스의 하얀 세 개의 십자가 언덕에서 본 석양 무렵 전망

치열했던 개종 과정을 보여주는 기념물로는 빌뉴스 구시가 어디서나 잘 보이는 하얀 세 개의 십자가 언덕(the Hill of Three Crosses)이 있다. 이 삼십자가는 게디미나스 성채 언덕보다 더 높은 동쪽 공원 언덕 위 기념물인데, 막상 올라가 보면 그냥 하얀 콘크리트 십자가 세 개다. 전망이 좋아서 많이들 올라가는데, 마침 올라갔을 때 그 앞에서 경건하게 성경을 읽고 있는 신학생인 듯한 청년이 눈에 띄었다. 안내판에는 빌뉴스 지역 기독교 선교 초기에 순교한 선교사 세 명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되어 있다. 그들을 죽인 이교도들이 리투아니아 사람들일 터이다. 이렇게 큰 십자가를 세워서 초기 선교사들을 기념할 만큼 가톨릭 신앙이 독실한데도 이교 문화가 당당히 공존하고 있으니 참 독특한 민족성이다.

카우나스 두물머리 공원 꼭짓점의 이교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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