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0일
#카페가좋아요 #스타벅스는없지만
개강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고 학기 초의 바쁜 분위기와 이런저런 일정이 카우나스에서의 '일상'의 시작을 알렸다. 수업이 월, 화요일에 몰린 세 번째 학기는 주초에 강의를 끝내면 주말까지 시간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었다. 수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해야 했다. 아시아센터의 내 책상에 꼭 앉아 있을 의무는 없었다. 수업 준비든 다른 일이든 집에서나 카페에서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작업은 노트북이었고, 동료 교수들이나 교직원들과의 소통은 이메일이나 페북이었다. 딱히 위치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일을 해도 마찬가지인데 꼭 한 자리에 정해진 시간을 채워 앉아있어야 했으니 갑갑한 일이었다. 여기서는 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 해방감이 상당히 컸다. 심지어 '객원'인 데다 이방인이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체류자라는 입지가 자유로움을 더 과감하게 누리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서울에서보다 훨씬 많이 소위 '카페 놀이'를 하게 되었다. 숙소 방에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눈이 피로해지거나 갑갑해지면 자유로로 나선다. 카우나스 중앙의 '자유의 거리(Laisvės alėja, Freedom Street)'는 큰 나무가 두 줄로 쭉 늘어선 직선 보행로다. 양쪽으로 작은 카페와 식당,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가장 많은 커피 체인점이 베로 카페(Vero Café)인데, 갈색 톤의 간판과 인테리어에 학생들이 공부하기 편하도록 싸고 양 많은 커피와 전기 코드를 구비하고 있다. 한국의 카페베네와 비슷하다. 그다음으로 많은 매장이 커피인(Coffee Inn)인데, 최근에 상호를 카페인(Caffeine)으로 바꾸었다. 오렌지색을 주로 쓰는 디자인이고, 베로 카페보다는 학생티가 덜하지만 심플하고 문턱 낮은 느낌은 비슷하다. 그 외에는 사실상 지점이 많은 체인은 보이지 않았다. 자유로 두 곳에서 본 그린카페(Green Café)는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내세운 나타카페(Nata Café)도 구시가에 한 곳, 자유로에도 한 곳 있다가 닫았는데 그뿐이다. 다니다 보니 체인점보다는 단독으로 하는 가게들을 더 찾게 된다.
안타깝지만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대형 글로벌 체인은 리투아니아에 매장이 없다. 한두 곳이지만 맥도널드도 있고 KFC도 있으니 카페도 들어올 법 한데, 시장이 작고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서울에서 한 블록마다 한 곳씩 나오다시피 하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에 자주 들르면서도 딱히 좋아한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그런 브랜드 매장이 하나도 없는 곳에 와보니 뭔가 당연히 있던 것을 뺏긴 듯한 상실감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 매장은 버스로 8시간 걸리는 옆 나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다. 리투아니아에 대사관이 없었던 덕분(?)에 생각보다 자주 바르샤바에 갈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굳이 스타벅스를 갔다. 거기서도 스타벅스는 비싼 편에 속하지만, 왠지 서울 같은 '고향의 맛'을 거기서 봤다. 글로벌하다고 좋아해야 할지 서구화되었다고 한숨을 쉬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 카페들의 커피는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커피 체인보다 대체로 연한 편이었다. 그래도 향이나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페 숫자가 많아지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어서 인테리어나 매장 관리, 곁들여 파는 간단한 빵이나 디저트도 꽤 잘 갖춘 카페가 많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메뉴가 없는 것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다. 아이스 라테는 있는데 아메리카노는 없다. 한국 교환학생들이 많이 찾는 그린카페는 결국 학생들 부탁에 따라 메뉴판에는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비슷하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대학생을 주 대상으로 하는 도심 카페 직원들은 얼굴을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아시아 사람이 거의 없으니, 내가 기억을 못 해도 점원들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 거였다. 자유로와 구시가까지 크고 작은 카페들을 시간 날 때마다 탐방하듯 돌아다니는 것도 흥미로운 소일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