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누구보다 아끼는 친구M이 있다. 평소에는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거나 미래에 관한 이야기, 혹은 꿈에 관한 이야기 등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인데 유독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이상한 면이 있다. 이 M에게는 B라는 친구가 있는데 B라는 친구만 만나면 꼭 스스로가 되게 부족하고 이상하고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여러 일화를 들어보고 내가 M에게 해줬던 말은 친구 사이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거였다.
언제부터 인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가스등’(1938)이라는 연극에서 유래한 단어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연인간의 가스라이팅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많아지면서부터 이 단어가 많이 쓰이게 됐다. 그런데 이 단어는 비단 연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상황들은 과거에도 많았지만 명확하게 이런 상황을 정의하는 단어가 없었기에 그냥 흔히 있는 상황들로 치부하고 넘어갔지만, 이 단어가 많이 알려지면서 곱씹어보니 넓은 범위로는 가스라이팅의 일종이었구나 하고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에는 폭력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에 집중되었다면 지금은 정서적 정신적인 폭력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두게 됐다. 누군가의 자존감을 깔아뭉갬으로써 상대방을 지배한다.
M과 B의 사이에서는 M이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 서운함을 토로할 때마다 B는 M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M에게 네가 섭섭할 수는 있지만 공감을 할 수 없다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너는 너무 예민하다고, 그런 태도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M은 B에게 서운한 점이 생기면 늘 먼저 되묻는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너무 일반적이지 않은 건가?’ 그리고 B에게 이야기하면 상처받을 것이 예상되어 입을 다문다.
B는 서운함을 말하는 M의 의도를 문제 삼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서운해하는 네가 문제다. B는 M의 감정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것이라고. B는 M의 말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지만, 행동으로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이 행동한다. 마치 M이 원하는, 듣고 싶은 그 말과 행동을 전혀 해줄 마음이 없다는 듯이.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는 사람 사이에서는 절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내가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누가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한다면 스스로 깨닫자. 상대방은 나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깎아내리는 괴물같이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