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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Apr 05. 2022

하고 싶은 걸 못 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하고 싶은 걸 못 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진짜 아주 징글징글한 아이였다.’는 우리 엄마가 늘 내게 하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 나는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얻을 때까지 그것밖에 눈에 안 보이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갖고 싶은 운동화가 생겼는데 엄마가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그 운동화를 구경해보자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럼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그 운동화를 갖고 노래를 불러 댔다고 한다. “운동화 가서 보면 너무 예쁘겠지! 엄마?” “운동화 신으면 이쁠까?” “운동화가 핑크였지?” 질려버린 엄마는 주말 전에 내 손을 잡고 끌고 가서 그 운동화를 기어이 품에 안겨줬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얘기를 들어보면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구나 싶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하고 싶은 걸 못 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이 성격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닐까 싶다.


© JillWellington, 출처 Pixabay


나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걸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게 학창시절에는 학원이나 과외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였다면 지금은 뭔가를 배우는 것이라던가 가고 싶은 곳이라던가 하는 조금 더 광범위한 것들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학창 시절 god의 엄청난 팬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god 오빠들을 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고 요즘 소위 말하는 덕질에 퐁당 빠져들고 마는데 저 시기의 이야기를 하면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부족할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모아 팬 미팅을 한다는 대구로 기차를 타고 날아갔고 서울로 돌아오는 막차를 놓칠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다. 방송국을 제집 드나들 듯 (그 오빠들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건 일상이었다. (엄마는 이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혹시 딸을 낳았는데 딸이 연예인 덕질을 한다 해도 너는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며 두 눈 뜨고 지켜볼 거라고 하신다.)


원래도 좋아했던 야구에 정신이 돌아버릴 정도로 빠져 있던 시기가 있는데 그때는 한 시즌에 있었던 100경기가 넘던 내가 응원하는 팀의 모든 경기를 다 챙겨 보기도 했었다. (심지어 특히 그 해는 우리 팀 실력이 정말 못 봐줄 만큼의 실력이었는데 무슨 마음이었나 싶기도 하다) 학부 시절 주 전공이었던 회계학 외에 복수전공으로 법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정해졌을 때 미친 듯이 주 전공 수업을 때려 넣어 수강신청을 했고 1~2학년 2년 동안 모든 전공과목을 다 이수하는 데 성공했던 기억이 있다. 꼭 복수전공으로 법학과에 가고 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눈이 돌아버렸던 시기다.


© Anna 00K, 출처 OGQ


이런 내 성격이 무섭기도 하고 어떤 하나에 꽂히면 돌아버리는 이 성격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점점 더 어른이 되면서 내게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버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자연스럽게 이 병이 나아가는 것을 깨달았다. 이 병은 삶의 무게가 켜켜이 어깨에 쌓이며 완치가 되는 것이었다.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이 병이 완벽하게 완치가 되기 전까지 조금은 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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