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렸을 때부터 진짜 아주 징글징글한 아이였다.’는 우리 엄마가 늘 내게 하는 이야기다. 어렸을 때 나는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얻을 때까지 그것밖에 눈에 안 보이는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갖고 싶은 운동화가 생겼는데 엄마가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그 운동화를 구경해보자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럼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그 운동화를 갖고 노래를 불러 댔다고 한다. “운동화 가서 보면 너무 예쁘겠지! 엄마?” “운동화 신으면 이쁠까?” “운동화가 핑크였지?” 질려버린 엄마는 주말 전에 내 손을 잡고 끌고 가서 그 운동화를 기어이 품에 안겨줬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얘기를 들어보면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구나 싶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하고 싶은 걸 못 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이 성격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걸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게 학창시절에는 학원이나 과외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였다면 지금은 뭔가를 배우는 것이라던가 가고 싶은 곳이라던가 하는 조금 더 광범위한 것들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학창 시절 god의 엄청난 팬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god 오빠들을 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고 요즘 소위 말하는 덕질에 퐁당 빠져들고 마는데 저 시기의 이야기를 하면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부족할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모아 팬 미팅을 한다는 대구로 기차를 타고 날아갔고 서울로 돌아오는 막차를 놓칠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다. 방송국을 제집 드나들 듯 (그 오빠들을 보기 위해) 찾아가는 건 일상이었다. (엄마는 이때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혹시 딸을 낳았는데 딸이 연예인 덕질을 한다 해도 너는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며 두 눈 뜨고 지켜볼 거라고 하신다.)
원래도 좋아했던 야구에 정신이 돌아버릴 정도로 빠져 있던 시기가 있는데 그때는 한 시즌에 있었던 100경기가 넘던 내가 응원하는 팀의 모든 경기를 다 챙겨 보기도 했었다. (심지어 특히 그 해는 우리 팀 실력이 정말 못 봐줄 만큼의 실력이었는데 무슨 마음이었나 싶기도 하다) 학부 시절 주 전공이었던 회계학 외에 복수전공으로 법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정해졌을 때 미친 듯이 주 전공 수업을 때려 넣어 수강신청을 했고 1~2학년 2년 동안 모든 전공과목을 다 이수하는 데 성공했던 기억이 있다. 꼭 복수전공으로 법학과에 가고 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눈이 돌아버렸던 시기다.
이런 내 성격이 무섭기도 하고 어떤 하나에 꽂히면 돌아버리는 이 성격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점점 더 어른이 되면서 내게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버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자연스럽게 이 병이 나아가는 것을 깨달았다. 이 병은 삶의 무게가 켜켜이 어깨에 쌓이며 완치가 되는 것이었다.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이 병이 완벽하게 완치가 되기 전까지 조금은 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