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좀비처럼 살아있어요

버티다보니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by 김잔잔

1.

무더운 여름에 헤어지고, 가을이 채 오기전에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나 싶은 심정으로 축축한 여름을 눈물과 함께 느릿느릿 기어오르고, 가을의 낙엽을 쓸쓸히 온몸으로 통과하다보니 여기 11월 25일까지 왔다. 좀비처럼 가슴이 뻥 뚫려 공허함이 온몸을 감싸는 날도, 슬픔에 비질비질 우는 날도, 외로움이 공포가 되어 식은땀이 되는 날도, 아무 생기가 없는 날도, 낙엽이 바닥에 뒹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깔인 날에도, 아무일 없이 평범한 하루도 그저 살아냈다.


2.

헤어진지 4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상대가 꿈에 나온다.


3.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거라고 하고, 나도 그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못하겠다. 그냥 마음이 비워져있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기존에 있던 자리를 비워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텐데, 아직 방을 비워주지 않고 있다. (방 빼 이자식아) 결혼 적령기는 하루하루 멀어져가고 본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번호 따일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하는 수 없지 않나. 나에게 우리 관계는 아주 오랜 애도가 필요한 깊이였나보다, 생각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 혼자 아직 뭐하고 있지? 상대는 이미 마음이 식어 날 떠난 자리에서, 나 혼자 가슴 절절해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이럴수록 손해잖아. 빨리 다음 사람을 찾아나서야돼. 시간이 없어.' 라는 초조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4.

그동안 연재에 실패했다. 글을 쓴다는 것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처핥기'단계에서나 가능한 것임을 실감했다. 매일 브런치에서 '독자와의 약속 기한이 넘었다'는 독촉 알림이 왔지만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이곳에 와서 조용히 내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콕콕 쑤셨다. 최대한 상실감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아니면 죽지 않을만큼 느껴주며 버티는 것 외에 글쓰기라는 적극적 행위를 할 자신이 없었던것 같다.


5.

그런데 오늘은 쓸 수 있는 컨디션이다.

"나, 꽤나 행복한 상태일지도?"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왔다. 이런 때가 흔치 않기 때문에 힘을 내어 기록해둬야한다. (그게 무엇이든 - 애도의 과정이든, 나에 대한 칭찬이든) 이 이야기는 본격 하나의 주제이기 때문에 다음편으로 넘겨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이번 편에서 나는 가을 좀비처럼 살아있고, 살아있는 건 쉽지 않고, 여름에 한 이별이 초겨울까지 와버렸다는 정도의 소식만 업데이트하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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