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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Aug 26. 2024

분리불안은 강아지들만 겪는 게 아니었다.

다시는 강아지 안 키울래.

24시간 털을 뿜고 아침저녁 수시로 대소변을 뿜어내며 온 이불과 바닥을 털뭉탱이로 점령하던 강아지들이 병원에 입원 한 지 삼일차.


두녀석은 무사히 슬개골탈구 수술을 이겨냈고, 영양 보충하라고 챙긴 삼계탕과 짜 먹는 간식을 병원에 전달해 주고 수요일 무사히 퇴원만 하면 된다. 병원의 친절하고 섬세배려덕에 아침저녁으로 강아지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전달받았고, 먹고 견디고 있다니 그저 다행인 상황.


강아지들이 우리 집에 오고 난 이후, 나는 한 번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하루 24시간 강아지들에 메여 있어야 했다. 심지어 집에 있는 로봇청소기도 웬만하면 국내 대기업 제품을 살려고 했지만, 원하는 기능인 로봇청소기에 카메라가 내장된 모델이 없어서 중소기업걸 선택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출근이나 외출할때 카메라로 강아지들의 상태를 휴대폰으로 언제든지 확인 할수 있다.


나 여덟 살 때, 둘째 숙모가 출산을 하시느라 할머니가 외출을 하시는 날이었다. 시간이 오전 11시쯤이었나. 토끼보고 강아지 보고 있어라~ 할머니 금방 갔다 오마 하시고, 할머니는 작은 아버지차를 타고 가셨다. 약주를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도 할아버지 좀 있다 온다고 하시고 마을 회관으로 내려가셨고.


점심시간 즈음 배가 너무 고파서 전기밥솥에 밥을 한 대접 푸고 냉장고엔 손이 닿질 않아서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를 하나 열었더니 뻘건 고추장이 있었다. 한 숟갈 푸지게 퍼 밥에다 뻘겋게 비벼먹다 매워서 못 먹겠기에 마당 아무 데나 갖다 늘어놓고 할머니 말씀대로 막 새끼를 낳은 토끼를 몰래 훔쳐보기도 하고 목줄에 메여있는 도꾸옆에 앉아 같이 할머니 언제 오노? 대답 없는 대화를 걸어보고 시간을 보내다 어둑어둑 해졌다.


겨울밤은 빨리 찾아왔고 캄캄하고 좁은 방안에 잘 나오지 않는 TV 혼자 치직거리며 떠들기 시작했고 겨울바람에 쏴 하고 흔들리는 대나무 숲 소리가 문득 무서웠다. 덜컥 무서운 마음에 노란 콧물을 쭐쭐 흘리고 엉엉 울다 할머니집을 나서 온동네방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짖으며 헤매기 시작했고, 마침 이웃 주민께서 왜 울고 있느냐며 흐르는 콧물을 닦아 주시고, 옥춘으로 날 어르고 달래 데려다 아랫목에 눕혀 재우셨다.


시간을 얼마나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오시면서 날 둘러업고 집에 들어가니, 할아버지는 얼큰하게 취하셔서 안방에 누워계시다 아침까지 된통 혼이 나셨고 (어린아이 혼자 두고 술 마시러 갔다고 엄청 혼나셨다) 나는 다음날 아침 할머니 얼굴과 할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보며 서러운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냈었다.


나는 분리불안이 강아지들에게나 혹은 어린아이에게나 있는 줄 알았다. 내일모레면 마흔 살인 내가 강아지들이 보고 싶어서 목 놓아 꺼이꺼이 울게 될 줄이야.


우리 강아지들의 첫사랑은 내가 아니라 그래서 내가 꼭 마지막 사랑이 되어주겠노라고 다짐하며 데리고 왔다. 나중에 늙어 아파지면 돈이 얼마가 되든 너희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며 데리고 왔다. 강아지들이 몸무게도 어느 정도 있어서 수술비가 조금 부담될 수준이긴 했지만 아직도 그 수술비 지출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오늘 삼계죽과 그리고 간식을 전달해 주고 데이트도 신나게 하고 오는 길에 내 쏠메이트가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만약에 엄청나게 부잣집에서 키워주겠다고 강아지들 달라고 하면 줄 거냐고. 나는 절대 안 준다고 말했다. 이유는 그 녀석들 없으면 내가 폐인이 될 거 같아서였다.


텅 빈 집에 들어오는데 문득 씁쓸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도어록을 누르는 순간부터 벌써 와와 짖으면서 현관문 앞으로 반기러 달려오는 게 항상 당연한 일이고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반가운 멍멍이 짖음이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함 가운데,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 잠깐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이 녀석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꿈을 꾸고 또 잠에서 깨서 한참 또 꺼이꺼이 울어댔다. 나는 분리불안이 강아지들에게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분리불안을 느끼게 될 줄이야.


보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데, 볼 수가 없으니 병원에서 보내준 밥 먹는 영상보고사진을 들여다보고 입을 맞추고 얼굴에다 비벼보고, 이불 돌돌이 밀다 나온 수염한가닥에 눈물콧물이 또 금방 줄줄 흐른다. 당장 녀석들이 며칠만 없어도 이렇게 난리가 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무지개다리를 건넌단 생각만 해도 그냥 속절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얼마 전 불의에 사고로 강아지를 잃은 반려인이, 펫로스 증후군을 견디다 못해 대리견을 통해 강아지를 복제하고 그게 세간의 관심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심 마음이 이해가 간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그런 선택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수십 마리의 어미견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윤리적이지 않고 또 마땅하다 생각하진 않아서 나는 굳이 그런 선택까진 하지 않겠지만.


강아지를 보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반려동물을 돌보고 건사하는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이겠냐 싶지만 또 그 한도 끝도 없이 퍼주고 싶고 더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 보니 나는 강아지 키우면서 사람 됐구나 싶다. 이제 이틀밤만 무사히 지내고 나면 내 몸이 귀찮고 힘들더라도 오롯이 나혼자 강아지들을 집에서 케어하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이마음 잊지 않고 그때도 오늘을 계속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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