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고, 인정받는 것은 더 행운
사람들이 흔히들 말합니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고.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사람들은 각자가 여러 가지 이름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죠.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아프리카 BJ, 브런치 작가, 자소서 쓰는 사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 강사 등등 여러 가지 명찰을 달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 이건 일적인 명찰이고. 업무 외적으로도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명찰들을 갖게 된 것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 큽니다. 아프리카 BJ만 해도 제 방송을 봐 주는 200여명의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거니까요.
조선 역사에서 꽤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황희 정승 명예퇴직 도전기입니다. 실록에도 이미 나와 있지만 황희 정승은 70대 때부터 조정을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고 사직서도 수십 차례 냈다고 하는데요. 그 때마다 황희 정승을 아끼는 세종 대왕이 번번이 이를 반려했다고 합니다. 원할 때 퇴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리 어렵다니! 이건 근로기준법에 어긋난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태평성대를 물려 주는 데 큰 기틀을 만들어 주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사실 제가 퇴사할 때가 생각나더라구요.
흔히들 대기업에 입사하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저희 회사도 제가 들어갈 당시에 294대1이었으니까요. 입사 과정도 기간으로만 치면 두어 달이나 걸려 최종 채용이 결정되었습니다. 주변에 회사를 나가던 선배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입사만큼 퇴사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퇴사자들이 맡던 업무량이 있을 테고 그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업무를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이후 남은 사원들의 워라밸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운이 좋았던 건지, 운이 나빴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퇴사할 때 그렇게 큰 만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조직에서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회사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겠다.' 일부 분들이 제가 만들 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 단계(팀장)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직에서는 팀장이냐 중간 관리자냐 팀원이냐에 따라 취해야 하는 stance가 다릅니다. 게다가 팀장이 될 수 있는 인원 수는 제한적입니다. 아래에 있을 때, 조직에서 인정받고 성과를 낸 사람이 팀장(리더)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나가서 무얼 할 거냐?
제가 가장 많이 듣던 질문입니다. 그 때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이 일을 열심히 해 제가 만들어 갈 비전이나 미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일부 분들은 이해를 못하기도 하셨지만 제가 가장 존경하던 상무님께선 많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일의 성격을 떠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품은 채로 떠나는 것에 응원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회사에 있으면서 제가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꿈꾸던 어른으로서의 모습보단 많이 멋없다 보니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회사를 나오기 직전 회사에서 이미 성공한 분의 응원을 받아 나올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응원이 많은 에너지가 되어 지금까지 열심히 저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튼 저는 제가 마음 먹었던 시기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이후 향방은 지금도 잘 모릅니다. 방금도 친한 후배와 통화를 했지만 제가 가는 지금 이 길이 정확히 뚜렷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하지만 퇴사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원하는 시기에 회사를 나가겠다는 결정을 하고, 그 결정대로 과감하게 행동했던 제 자신에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