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나 오기 따위가 가치 없지 않다는 사실
비가 옵니다. 회사 다닐 때를 떠올려 보면 언제나 월요일 출근길은 미간에 잡힌 주름마냥 꽉 막혀 있었는데, 거기에 비까지 온다니 출근하실 전국의 수만 직장인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뭐... 저야 출근을 하지 않고, 우리 모임에 지각하지 않았으니 벌금도 내지 않고.. 기분 좋은 한 주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매주 월요일 7시는 일취월장 모임을 하는 날인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독 일찍 모임 장소에 왔습니다. 만일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이 정도의 열의가 있었다면 이렇게 금방 관두지 않았을 텐데... 라는 작은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 현재를 열심히 살아 가리라 다짐하며 오늘 브런치도 시작해 봅니다.
어제 제 브런치에 댓글 다신 분이 있었습니다. 5-6줄이나 되는 긴 댓글이라 차분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 분께서는 퇴사를 당장 하긴 어렵겠지만, 1년 뒤를 바라보고 준비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발적 퇴사보다는 계획적 퇴사가 좋지! 라고 생각하면서 댓글을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이 다니는 40대 언니가 네 미래가 곧 나라면서 이렇게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라는 핀잔에 마음이 많이 좋지 않았음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 역시 저처럼 퇴사한 이후, 저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 혹은 회사나 다니라고 저에게 면박이나 줄 줄 아는 이들에게 뭔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오늘의 주제는 "오기"입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제가 일을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희 회사 일의 난이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실수투성이였고, 연이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를 쉽게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사실 돌이켜 보면 개선의 의지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일에 애정이 가득하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주어진 일을 쳐내기에 급급했습니다. 조직에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더 에너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회사란 곳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 못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기들이야 인정상 저를 특이한 사람으로 보고 같이 대화해 줬을 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던 동기들이나 소수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내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제 편의 숫자보다 저를 하찮게 보거나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에 있습니다. 팀 내에서 천덕꾸러기이고 MBO 평가에서 C는 이미 확정되었다는 등의 소문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 외적으로 저라는 사람을 평가 절하하는 이들의 시선에는 저도 사람인지라 움찔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연기자들이 촬영장에서의 삶과 연기 외적인 사람으로서의 삶은 구별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회사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못하더라도 회사 바깥에서의 모습은 분명 다를 텐데 그런 모습까지 이른바 "병신"일 거라고 단정하는 이들의 시선은 견디기 버거웠습니다.
그렇게 저를 "병신" 취급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확실히 회사에서 인정 받고 잘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에서 성과도 내고 윗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는 회사원들의 워너비. 자신들이 살아 온 방식이 맞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거죠. 그래서 자기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지향하는 저 같은 "미운 오리 새끼"들을 비웃음 섞인 시선으로 본 거 같습니다. 그런 그들의 평가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제가 부정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엇을?
완전히 달라진 나를
평판이 중요하지 않다, 내 삶이 중요하다라고 제가 입버릇처럼 떠들었지만 저도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전 회사 분들도 퇴사 후 제 행보에 대해 간혹 관심을 갖고 지켜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고, 당연히 모두가 다 그런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제가 잘 되나 못 되나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저엔 요새 같은 불경기에 LG란 대기업을 나가서 제가 얼마 못 갈 거라고 생각하리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 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주류 무대에서 이미 잘 닦여져 있는 길을 걷는 것만이 삶의 정답이 아니고, 저처럼 비주류에서 산전수전, 좌충우돌 편견과 싸워 가면서 쌓아 가는 커리어도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다행히 퇴사를 해서 멋지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선배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 분들은 이미 소속된 전 직장에서 성공적 커리어를 만드셨던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저는 그 분들에 비해 경력도 미천하고 퇴사란 배팅을 던지기엔 무리수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번 도전해 보렵니다! 이 도전 속에서 꽃을 꼭 피워서 저를 응원해 줬던 분들, 여전히 저를 업신여기는 분들에게 보여 줘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저는 오기의 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