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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진짜 '시원한' 여름

물리적 더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더라

by 하리하리

그저께 새벽에 야식 아닌 야식으로 찜닭을 먹은 이후, 어제부터 다이어트라는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뒤 달라질 저를 머릿 속에 그리면서 인류 최대의 숙제라는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다이어트로 몸이 달라진 걸 느꼈던 만큼 이번 다이어트도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여름날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이런 계절에 부득이한 노출은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 때 살이 디룩디룩 쪄 있는 제 외관을 드러내는 것은 괴로울 거 같단 말이죠. 다이어트로 포문을 열었지만, 오늘 글의 주제는 '여름'입니다. 그간 여름에 비해 올 여름을 맞이하는 소회는 남다릅니다. 왜냐구요? 회사를 나와서 처음 맞이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제 최애곡 중 하나인 '여름날' 들으며 보세요 :)



최근까지 저는 2번의 여름을 사무실 안에서 보냈습니다.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무실 안에서 여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도 전기료를 아끼겠다고 에어컨을 트는 빈도 수를 상당히 줄였거든요. 수십 명이 있는 강의실에서 튼 것 같지도 않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강의실에 있으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회사 내에서 멋지게 일하는 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가 꿈꾸던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입사한 날짜도 8월달, 한 여름이었습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던 순간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배치 받은 곳이 제가 예상하던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평택이었던 것입니다. 이전에 인턴으로 일할 때에도 광화문 본사 안에 있었기 때문에 평택에서의의 삶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생각했습니다.


설마, 많이 다르겠어?


그런데 제가 일하던 평택에서의 일은 흔히 생각하는 화이트 칼라로서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공장 지대 근처에 사무실이 있었고, 제가 맡은 고객사들도 공장이 많았습니다. 직접 상주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안의 사무 공간이라 할지라도 환경은 열악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몸은 시원해도 마음이 시원하지 않은... 뭐 그런 것? 그리고 하는 업무 역시 거친 성격의 것이 많다 보니 시원한 사무실 바깥에서 고객 분들과 땀흘리며 일하고 물건 나르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렇게 오지에서 1년 여를 고생하니 본사에서 불렀습니다. 어른들은 말씀하시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회사에서 키워 주려고 너를 부르는 게 아니냐며? 회사에서 느꼈지만 이 사람을 회사에서 인재라고 단정 짓고 키우는 데에는 정말 많은 검증과 긴 숙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퍼포먼스 혹은 그 이상의 업무 성과를 보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 내에는 득실대는데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회사 내에서 사람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는 것 같지도 않은 저에게 관심을 보일 리 만무했던 거죠. 회사는 시원했지만 제 마음은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고, 퇴근 후에 맥이 풀려서 눕기 일쑤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누구보다 싫었고, 누워서 출근 시간에 딱 맞춰서 대강 준비하고 집 문을 나가는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본사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사보다는 고객사에서 상주 근무하는 것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공상도 하면서 일하는 그 순간이 해방구 같았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고객사에서 본사로 올라오게 되었고, 윗 분들의 지근거리 안에 제가 있게 되면서 일과 회사에 애정이 없는 제 밑천이 금방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돈이 들어가지 않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의 삶을 버리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땀 흘리는 여름을 자처해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여름이 어떠냐구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매우 행복합니다. 행복이란 감정 자체가 주관적인 성격의 단어이다 보니 똑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누군가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찜통 같은 한낮의 더위에 뭔가 일감을 따내기 위해 종로, 신촌, 강남을 누비고 그 와중에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매고 다니다 보니 땀은 비오듯 쏟아지지만. 행복합니다. 뭐니뭐니해도 그렇게 흘리는 땀이 보람차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회사를 나왔고, 퇴사란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여기 저기 다니며 약속을 잡고. 그렇게 잡은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제 열정을 다해 상대에게 저의 강점과 재능을 어필하고. 그렇게 1건이라도 강의나 계약을 따내는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에어컨도 부럽지 않습니다.


여름에 온도와 습도가 올라갈수록 제 열정도 함께 올라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손에 잡히는 결과로 이어지면 희열감은 배가됩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혼자 일어서는 법을 깨우치는 것 같습니다.


여름아, 부탁해. 나의 가을을


제 노력이 알찬 성과로 돌아오리라 기대하면서 오늘 강의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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