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국은 다시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 영화, 와일드
요새 넷플연가란 모임을 하나 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다. 내가 신청한 건 하루키 클럽이었다. 하루키를 좋아해서였다. 명작과 성실함 사이의 오묘한 관계 (brunch.co.kr) 라는 주제의 글까지 썼을 정도니까 (참고로 하루키 책을 이외에 더 본건 없다. 괜히 하루키 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드네...)
하튼, 이 모임의 장께서 처음에 보고 오라고 한 영화가 있었다. '와일드'였다. 사실 요번 모임을 등록하면서 결심한 게, 콘텐츠를 각 잡고 소비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난 매일 2-3편의 글을 뚝딱뚝딱 써 내려가고, 그 글 때문에 먹고 살고 있다 보니 글 쓰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다(물론 장르적 한계는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콘텐츠(영화가 됐든, 책이 됐든)를 소비하는 게 어색하다. 그 소비의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더 나은 작업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발버둥의 시간으로 인식되었다.
올해부터 콘텐츠 자체를 온전히 즐겨보기로 마음먹은 상태여서 자소서 작업을 하는 중간중간에 각을 잡고 앉아서 봤다. 그러나 봐야 되는 시간이 점차 다가오면서 지하철 속에서 보기도 하고, 조금 배속을 빨리 해서 보기도 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매우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간만에 영화를 완전히 감상했다(참고로, 중간에 약간 부끄러운 장면이 나오는데, 퇴근시간 한창 때에 지하철 속에서 그 장면이 나와 주변 눈치를 엄청 살폈다). 하튼, 영화 와일드의 리뷰를 시작해 보겠다.
영화는 한 여자가 Fuck를 외치는 것부터 시작된다. 사실 조금 야한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발톱을 빼는 초반의 장면이 지금 생각해 봐도 으~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리얼하게 화면에 묘사되었다. 산비탈을 오르다가 등산화가 발에 맞지 않아 피가 났고, 발톱을 그래서 빼면서 Fuck란 한 마디를 외친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이 여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 여자가 PCT트레킹을 하게 된 이유는 후에 나오지만, 어머니가 부끄러워하지 않는 딸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었다. 이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을 마주하기 두려웠는지 마약, 낯선 남자와의 섹스 등을 고통의 방패막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는다(물론, 결혼한 남편의 아이 말고 말이다). 그 아이를 지우고자 마음먹고, 괴로워하다가 트레킹을 떠나기로 결심한다(이 내용은 영화 중간에 나온다). (이 얘기를 모임에서는 하지 못했는데) 나는 여자가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선택한 것에서 유발된 괴로움이 트레킹을 가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자신을 가졌다. 그렇지만, 자신과 남동생을 포기하지 않고,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런 어머니와 다른 선택을 하는 자기 자신이 미치도록 괴로웠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PCT 트레킹이 엄청 험난한가 보더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다른 남자 트레커들이 부러움 섞인 이야기를 한다. 그 속에는 약간의 의심도 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자는 중간에 나오는데, 낯선 남자들에게 몸을 판다. 그렇지만, 이 트레킹 기간 내내 그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이 주도적으로(몸과 마음이 동해)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은 나온다(리뷰 초반에 제가 지하철에서 봤던 살짝 민망한 장면이요...). 초반에 어떤 남자 분을 오해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었던 장면도 나왔다. 처음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 보였지만, 사람들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움과 응원을 받으며 신의 다리에 도착한다. 그러면서 아마 그녀는 다시금 사람을 믿게 됐을 것이다. 주인공의 여정을 지켜보며 어린왕자 책이 떠올랐다. 어린왕자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장미꽃에게서 자신이 모진 말을 자주 뱉었지만, 알고 보면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영화에 나오는 대사였는데)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어머니가 겹쳐 보였다.
다른 분도 모임에서 말씀하셨지만, 이 영화에서 어머니가 진짜로 현명하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뒤늦게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공부를 하고자 대학에 들어간다. 딸의 날선 멘트에도 되려 따스하게 딸을 감싸준다. 영화 말미에 여주인공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머니께 모진 말을 했던 자신의 과오가 생각났을 것만 같았다(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일찍 운명을 달리하신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며 부모님 두 분 다 떠올랐다. 어머니, 정말 존경한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이후, 나를 가진 뒤, 관뒀던 은행에 다시 계약직으로 들어가셨다. 나와 동생의 교육비, 생활비 등을 그 작은 월급으로 모두 메꾸셨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가족의 안위와 자식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나서 내가 취직하고 단 1년 만에 모든 빚을 갚으셨다. 어머니를 보면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어머니를 뒤늦게 떠올리며 회한의 감정이 차올라 눈물을 흘린 것,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던 일이었다. 지금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할 걸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아버지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3년 가량을 흘려 보냈다. 작년 겨울에 우연찮게 다시금 아버지와 만났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울 만큼 아버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다시 식사를 한다. 최근에 이 영화를 보니 정말 다시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주인공의 여정은 정말 험난했지만,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포근함을 느꼈다. 그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 주인공을 지켜줬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