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만남이 감겨 있는 나의 또 다른 눈을 뜨게 해 주다
워낙 사람만나는 걸 좋아하는 ENFP인 데다가 일 자체도 매번 새로운 의뢰인을 만나는 게 주업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쫓긴 듯)이 살아간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 아주 가끔씩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나를 설레게 한다. 무조건적으로 맞다고 볼 수는 없지만,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는 건 그 사람만의 세계가 확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세계를 알게 된다는 건 정말로 거룩한 일이다. 그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의 세계가 한 차원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분을 알게 됐다.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글을 쓰는 걸로 업(業)을 삼고 싶어 하셨다. 자소서를 맨날 보고 피드백을 하는 나에게도 그 분이 글을 보여주셨다. 그 글은 나에게 잊고 있던 보석상자를 꺼내게 만든 힘이 있었다. 너무 바쁜 현생에 치여서 잊고 살던 그런 간질간질한 어린 시절. 그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꿈이 가득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너무 그 글에 매료돼서 가슴이 뛰었다. 알고 보니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글자 하나하나에 꿈이 서려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면서 잔디밭을 뛰어가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 덕분에 나도 나의 어린 시절 일기를 꺼내 볼 용기가 생겼다.
순간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릴 때의 난 참 답을 내고 싶은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정답에 대한 갈망. 근데 이제는 정답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엔 정답이었던 것이 이제는 정답이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 와중에 손빠닥이라고 쓴 걸 보니 정말 내가 손을 맞은 게 너무나도 아프고 억울했나 보다.
이걸 보면서 바로 떠오른 건 이제 100원으로 뭘 할 수 있을지부터인 거 보면 난 너무나도 커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눈에 띈 단어 하나는 보람이었다. 나는 과연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나서 잠자리에 누운 뒤, 보람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요새는 항상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누구보다 쿨한 척을 하지만, 결국 나도 정통 A형이다 보니 밤만 되면 그 아쉬움들이 반드시 다시 나를 찾아온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일기를 들여다보면서 과거의 내가 건네는 인사에 응답해 볼 요량이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내 좌우명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말자."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의 삶이 안정을 찾고, 미래를 향해 의도한 건 하나도 없지만, 계획한 듯이 나아가게 되면서부터 다시금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즈음에 찾아와 준 그 사람의 글은 나에게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는 용기를 줬다. 또 난 누군가의 글을 기다린다. 글에는 그 사람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세계를 읽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는 그 숭고한 경험을 또 한 번 해 보고 싶다.
(일기는 자주 이렇게 들여다보면서 나의 브런치 페이지에 등장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