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

“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계절, 그 이름은 가을이다.”

by Blue paper

계절의 변화를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낮에는 여전히 반팔로도 버틸 만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두터운 점퍼를 걸쳐야 한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목감기로 고생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행히 코타키나발루 여행 중 한 번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큰 탈 없이 지나가고 있다. 제발 이번만큼은 무사히 넘어가길 바란다.


요즘은 왜 이렇게 비가 잦은지 모르겠다.
고구마를 수확해야 할 시기인데 지난주도 비, 이번 주도 비. 어제도 하루 종일 내렸다.
비닐하우스의 당근은 과습으로 일부가 녹아버리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일주일쯤 강한 가을 햇살이 절실하다.

벼농사를 짓는 이웃의 논도 사정이 비슷하다.
장맛비처럼 쏟아진 비로 벼가 쓰러졌지만, 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냥 두는 모습이 보인다.
추수를 해보면 멀쩡한 벼만 거두고, 쓰러진 벼는 그대로 남는다.


이곳 농민들의 대부분은 65세, 아니 70세를 훌쩍 넘긴 분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농촌의 현실이 참 씁쓸하다.


요즘 아침이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기러기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철새들의 이동 시기.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기러기들이 논 위를 날며 울음으로 아침 공기를 깨운다.
서산의 장관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브이(V) 자 대형을 그리며 선두의 한 마리가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 한 줄의 비행 속에 계절의 리듬이 담겨 있다.


작년까지 이 집을 가꿨던 분은 꽃을 아무렇게나 심지 않았다.
3월의 장미로 시작해, 계절마다 피어나는 순서를 고려해 정성껏 화단을 꾸몄다.
봄의 장미가 지나면 여름의 수국이 만개했고, 지금은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곧 화단은 은은한 국화 향으로 물들 것이다.


텃밭 가장자리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학교 정문 길 양옆으로 줄지어 피어 있던 코스모스들.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길에 그 연분홍빛 물결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설레곤 했다.
그 시절의 코스모스는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비타민 같았다.


이제는 마당의 나뭇잎들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한여름 내내 푸르던 잎들은 축 처져 가고, 앙상한 가지들이 드러난다.
쓸쓸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 나는 오히려 계절의 힘과 시간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곧 이 마른 가지 위에도 눈이 내려앉겠지.

벌써 시월이다.
한두 달이면 첫눈이 올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눈 덮인 길 위를 헤매며 돌아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새하얀 세상, 숨 막히게 고요했던 그 풍경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오늘 아침 화단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문득 ‘가을 향기’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몇 자를 남긴다.
가을은 언제나 이별과 기다림의 계절 같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시작의 숨결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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