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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제사상 안 차릴래"

마지막 제사상을 올린 날

by 친절한 마녀

강여사, 57년간의 상차림에 종지부를 찍다!


57년간 차려온 강여사의 기제사와 명절 상차림이

올해로 끝이 났다. 22살에 시집와 설과 추석 명절부터

아빠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올해로 8주기를 맞은 아빠의 기제사까지.

강여사의 상차림은 참 정성 가득했다.



지난해 강여사는 올해 아빠의 기제사를 마지막으로

더는 집에서 제사상과 명절 상차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사와 명절에는 간단히 음식을 장만해

조상님을 기리며 감사하는 것으로 예를 올리고, 가족 식사를 하고, 아빠가 잠들어 계신 곳으로 찾아뵙는 것으로 정리했다.



강여사의 상차림에는 허투루 쓰이는 손길이 하나도

없었다.

상 차리기 몇 주 전부터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서너 차례 장을 보는 것은 기본이고, 일일이 다듬고

무치고 부치고 끓였다.



그 과정이 지리하고 귀찮아 주문을 하거나 완성된

음식을 사다 올릴 법도 한데, 강여사에게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종심(從心)을 넘긴 뒤로는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일을 점점 버거워하시기 시작했다.



한 해 한 해 집에서 상차림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에

부치신 탓이 컸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내 대에서 정리해야지. 너희한테 부담을 줄 순 없을 것 같아.


제사와 차례상의 무게를 엄마 대에서 정리해,

우리에게 부담을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시원했다. 그 끝에 섭섭함이

배었다. 시원섭섭한 마음. 마땅히 이어받아 잘 섬길

만한 자식이 없어서일까, 미안함도 동시에 밀려왔다.



제사와 명절이 의무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우리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으니까.

하하 호호, 때론 티격태격, 즐겁고도 짜증스러웠던

순간들이 쌓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해졌으니까.



그 순간들은 이제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낼 추억이

될 것이다. 앞으로 명절이면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기존처럼

모일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모이는 날이 점점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형제자매는 예를 다하고 마음의 정성을 쏟을

것이다. 그게 57년간 강여사가 기리고 지켜온 신의에

대한 존경이고, 강여사가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온

감사이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엄마에게 배우고

익힌 대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집에서의 상차림만 끝난 거니까

조상님, 아빠 섭섭하실 일 없게

우리 형제자매는 더 자주 찾아뵙기로 약속을 했다.



엄마,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이번 아빠의 기제사를 마친 후, 우리는

강여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렇게 강여사의 57년간의 상차림 여정은

막을 내렸다. 오랜 세월을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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