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만리동 길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가을이 남기고 간 누런 빛이 곳곳에 희미하게 붙어 있었지만,
이미 겨울의 금속성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서울역 철로에서 울리는 낮고 묵직한 진동이 이곳까지 바닥을 따라 퍼지고,
자동차들의 소음과 멀리서 번지는 시위 스피커 소리가 겹쳐 흐르며,
계절이 바뀌는 장면을 웅숭웅숭그리며 들려주고 있었다.
스카이 천사 빌딩을 지나 만리단 길이라고 하는 길에 접어들면서 작은 꽃집 하나가 보였다.
잠시 멈추게 만든 것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밝게 피어 있는 백합이었다. 홑겹의 꽃잎은 소금을 친 듯 희고, 은은한 향은 언 손끝을 천천히 데웠다. 꽃은 원래 바람에 실려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인데, 사람의 손길이 닿은 백합은 그 위에 반짝이는 가루를 얹고, 작은 보석과 리본, 박명한 금빛 레터링까지 달아놓고 있었다. 자연에 하나 더, 또 하나 더 얹어놓은 장식. 마치 태초의 단순함에 수천의 욕망을 겹겹이 입힌 것처럼.
백합은 오래전부터 성모 마리아의 순결과 잉태의 신비를 상징하던 꽃이었다. 한 송이의 백합이 들려주는 의미는 조용하고 엄숙하고, 인간의 기도로 닿을 만큼 고요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의 백합은 순백의 침묵 위에 화려한 금속성의 장식이 떨리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숨이 가빴다.
왜 사람은 이미 아름다운 것 위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덧칠하고 싶어 할까. 꽃은 그 자체로 충분한데, 우리는 충분함 앞에서 늘 불안해지는 것 같다. 완성된 것에 안도하기보다, 조금 더 빛나게 만들고 싶은 충동. 어쩌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마음, 사라질 것들을 붙잡고 싶은 아주 오래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백합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손바닥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찬 공기 속에서 꽃잎은 흔들리고, 장식된 반짝임은 잠시 반사된 빛처럼 덧없었다. 화려함은 언젠가 벗겨지고, 향은 저물어가고, 꽃잎도 바스러질 것이다. 인간이 그 위에 쌓아 올린 장식 역시 결국 같은 길을 걷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더하고, 붙이고, 빛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름다움을 더 짙게 만든다는 진실을,
우리는 늘 늦게야 깨닫는다.
겨울의 길목에서 본 한 송이의 백합은 그렇게 오래 남을 질문 하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