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부. 맛집과 도시의 감각, 사랑의 일상 (1)
서울 종로의 한 골목.
낮은 건물들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희미하게 비스듬히 흘러내렸다. 도로 옆 하수구에서는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고, 빗물 자국이 남은 벽돌담에는 세월의 얼룩이 번져 있었다. 바람은 먼 골목 어귀에서부터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프롤과 에필은 통인시장, 오래된 국숫집 앞에서 멈춰 섰다. 간판은 오래전 칠해진 붉은 글씨가 흰색 페인트 위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남아 있었고, 유리문은 미세한 기름기와 먼지로 반투명하게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진한 멸치 육수의 냄새는 모든 망설임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냄새부터 이미 맛있어.”
에필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반짝였고, 코끝은 살짝 붉었다. 프롤은 알고 있다. 에필이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녀는 프롤이 좋아하는 국수를 프롤 보다 더 좋아하는 것처럼 늘 말했다. 프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이런 골목, 이런 맛. 같이 오니까 더 좋네."
문을 열자 낡은 종이등 아래로 따뜻한 김이 일었다.
주방은 좁고, 주인 할머니는 낡은 앞치마를 두른 채 냄비를 휘저으며 말했다.
“둘이요? 거기 앉아요. 곧 나가요.”
그들은 창가 쪽 나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표면엔 국물 자국이 어지럽게 말라붙어 있었고, 그 위로 두 개의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놓였다.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 두 개가 내려왔다.
면발은 하얗게 반짝였고, 육수의 표면에는 얇은 기름막이 햇빛을 받아 작은 무지개처럼 번졌다.
에필은 젓가락을 들다가 잠시 멈췄다. 먹지도 않고.
“맛있다. 이런 걸 먹을 때, 왜 이렇게 마음까지 뜨거워질까?”
프롤이 국수를 후루룩 들이키며 말했다.
“맛이란 건, 기억과 감정이 동시에 작동하는 게 아닐까?
또, 함께 먹을 때가 좋지.”
그 말에 에필은 미소를 지었다.
국물의 온기가 입안에서 목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사랑이란, 이렇게 아무 말 없이도 같은 맛을 느끼는 순간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오후의 햇살은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서울의 오래된 벽돌길 위에는 낙엽이 바스락거렸고, 오래된 오토바이 한 대가 천천히 골목을 지나갔다.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바람 속에 섞였다.
에필이 말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자. 지난번처럼 사진도 찍고.”
프롤은 에필이 생일 선물로 사준, 니콘 카메라를 꺼내며 웃었다.
“그래. 어디로 가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