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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물리학: 프롤과 에필〉

제5부. 부재의 계절 — 다른 비행기, 다른 하늘 (4)

by 원성진 화가

프롤이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엔 둘 다 동시에 돌아봤다.

시간은 잠시 멈췄다. 공기 중의 먼지가 반짝였다.

그건 마치 두 세계가 겹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환히 타오르는 듯한 장면이었다.


“너 왔구나.”

“응, 나 왔어.”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엔 천 개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 속에서 같은 풍경을 보았다.

파리의 하늘, 베를린의 그림자, 프라하의 다리, 그리고 센강의 마지막 빛.

그 모든 기억이 그 한 마디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날 밤, 프롤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사랑은 떨어져 있어야 자란다.

거리는 사랑의 온도를 잴 수 있는 유일한 단위다.

우리는 같은 별을 보지 않아도, 같은 빛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일기를 덮을 때,


에필도 똑같은 문장을 메모장에 적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두 입자가 서로 다른 궤도를 돌면서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같은 중심을 향하고 있는 듯이.

이것이 사랑의 물리학이었다.


부재의 계절을 건너며,

다른 비행기와 다른 하늘 아래에서조차 끝내 서로를 향해 끌려가는,

운명적 중력의 이야기.


사랑의 물리학


파리의 붉은 유리 아래,

두 얼굴이 빛 속에 겹쳐 있었다.
하나는 지금의 현실,
또 하나는 이미 사라진 기억.


“우리, 아직 함께인데 벌써 그리워.”
그 말이 공기 속에 흩어지고
비행기 두 대는 다른 하늘로 떠났다.


서울의 새벽과 부산의 새벽,
그 몇 분의 차이가 영원이 될지도 몰랐다.

사랑은 타이밍의 예술,
늘 ‘이제 막 사라진 것’의 형태로 남는다.


그들의 대화는 침묵이었고,
그 침묵이 곧 언어였다.

멀리 떨어져도 같은 공기를 마시며
두 마음은 보이지 않는 진동으로 이어졌다.


사랑은 존재의 실험,
떨어뜨리고 끌어당기는 에너지.

다시 만난 순간,
공기 중의 먼지가 반짝였다.
“너 왔구나.” “응, 나 왔어.”
그 짧은 말 속에
천 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랑은 거리에서 자란다.
별은 달라도 빛은 하나,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중력에 끌려가고 있었다.


<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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