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오천 원
[사진 봤어요? 이게 15,000원 ^^]
110번 버스는 날 행복의 나라로 데려다준다.
공덕역 1번 출구 하차
마포 공덕시장 안쪽, 그곳은 낮에 공덕 5거리 마천루 그림자같이 있다가, 밤이 되면 그림자에 불빛이 나온다.
오래된 간판, 미닫이 문 사이사이로, 또는 밑으로 김이 피어오른다.
겨울로 기울어가는 공기의 냄새 속에서, 국밥집 문을 열면 뜨끈한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엔 현대식의 매몰된 반들거리는 수저통,
그곳에서 순대국 한 그릇과 빨간 소주 한 병을 주문하면.
소주병의 투명한 빛, 그리고 뚝배기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돼지국밥이 나온다.
약간의 수육과 순대는 서비스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들려주는 소리는 묘하게 사람 마음을 안정시킨다.
수저를 넣어 휘저으면 하얀 김이 올라오고, 그 속에서 삶은 돼지고기들이 수면 위로 정체를 드러낸다. 입안에 넣으면 미세하게 남은 돼지비계의 부드러움이 혀끝에 녹아내리고, 고추장 다진 양념의 매운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그때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투명한 알코올의 불빛이 내 안에서 잠깐의 불꽃처럼 번쩍인다.
나는 이 짧은 순간을 ‘행복’이라 부른다.
행복을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오래전에 결심했다.
사람마다 행복의 모양은 다르고, 그 정의가 불분명할수록 더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정해두었다.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그것이 내 행복의 완성형이다.
행복이 그리울 때면 돼지국밥집으로 간다.
한 모금의 국물과 한 잔의 술로, 세상의 복잡한 문장들을 단숨에 지워버린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살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행복은 이 그릇 속에서 증명된다.
돈이란 결국 선택의 권력이고, 그 선택으로 나는 잠시라도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돼지국밥의 김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건 네가 정의한 행복이야.”
그렇게 말할 때,
세상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한다.
행복이나 달콤함 같은 말은 애매하고 멀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좇느라 지쳐버린다.
하지만 스스로 정의해 두면, 그 단어는 손안에 들어온다.
나에게 달콤함은 비 오는 아침, 이불속에서 들리는 빗소리다.
행복은 돼지국밥집의 김이다.
이렇게 단어들을 나만의 언어로 붙잡아두면, 세상은 더 견고해진다.
국밥을 다 비우고 나면 그릇 밑에 맑은 기름 한 겹이 남아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웃는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손에 잡히고, 혀끝에서 느껴지고, 지갑 속 카드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15,000원을 결제하고, 내 행복을 주문한다.
근데, 오늘은 20,000원 ㅠㅠ. 소주를 2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