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고통의 대화, 병원의 시간 (2)
눈을 떴을 때, 프롤은 하얀 천장의 빛을 보았다.
의료기기들의 전자음이 규칙적으로 울렸고, 왼쪽 다리에 깁스가 씌워져 있었다. 창밖으로는 회색빛 서울의 하늘이 보였다.
그가 에필을 찾자, 간호사가 말했다.
“그분은 부산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중상은 아니에요.”
둘의 거리, 약 400킬로미터.
몸보다 마음이 더 멀어져 있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이어졌다. 병실의 불빛이 꺼진 밤마다, 휴대폰 화면의 푸른빛이 그들의 유일한 창이 되었다. 텍스트, 이모티콘, 짧은 문장들.
그건 손끝으로 주고받는 언어의 실험이었고, 물리적 접촉 대신 감정의 전류가 흐르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었다.
에필 : “팔이 아직도 잘 안 움직여.”
프롤 : “나도 다리 깁스 중이야. 걷는 대신 타이핑만 하네.”
에필 :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같은 사고로 다쳤는데, 같이 못 있는 게.”
프롤 : “그래도, 같은 시간에 아픈 거잖아.
고통도 동시에 느끼면, 그것도 하나의 사랑이겠지.”
그 문장이 도착하자, 에필은 대답하지 못했다.
부산의 병실 창밖에는 저녁 바다가 보였다. 노을은 붉게 번지고, 바다 위의 갈매기들이 멀리 흩어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화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맞아, 아픔이 같으면… 멀리 있어도 손을 잡은 것 같아.”
시간은 병원 벽시계의 초침처럼 느리게 흘렀다. 그들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프롤이 병원 식판 사진을 보내면, 에필은 자신의 도시락 사진을 보냈다. 둘 다 밋밋하고 맛없어 보였지만, 그 안엔 서로를 위한 조용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고, 다음날엔 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필 : “어젯밤 꿈에서 너 봤어.
우리 파리의 카페에 있었어.
근데 이상하게 난 손이 없었고, 넌 발이 없었어.
그래도 손을 잡았어.”
프롤 : “그건 사랑의 구조야.
서로 없는 걸 나눠 갖는 것.
너의 결핍이 내 일부가 되는 거지.”
그들의 대화는 점점 철학적이 되어 갔다. 고통은 인간을 사유하게 만든다.
몸이 멈추면, 생각이 걷기 시작한다.
어느 날, 프롤은 창밖의 비를 바라보다가 메를로퐁티의 구절을 떠올렸다.
“몸은 세계에 대한 나의 열림이며, 사랑은 그 열림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그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 에필에게 보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