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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동, '산책' 큐레이터

'뜀과 걸음 사이'

by 타이완짹슨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방영하는 전국 노래자랑을 제외하고도 꼭 챙겨보는 2가지 스포츠가 있었다. 바로 '씨름과 마라톤'

하지만 리모컨을 쥘 수 있는 권한이 없던 어린아이에게 이 시간은 한 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씨름 방송 대신에 격투기를, 서울에 살게 되면서 어릴 적 tv로만 보던 마라톤 대회를 코 앞에서 지켜볼 일이 생겼다. 특히, 2024년 JTBC 마라톤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참가자가 몰렸다고 해서 행사 당일 구경을 간 적이 있었는데, 42.195km라는 여정의 종착지가 공교롭게도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올림픽 공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본 마라톤 현장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tv에서는 소수의 선두그룹만을 조명하였다면, 이곳은 눈길이 향하는 곳마다 대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이미 완주하여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의 거친 호흡. 그리고 저 멀리 달려오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모습까지, 다들 이 순간만을 위하여 살아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덕분에 이 날 동네에도 어르신들 복덕방 정도로 보이던 간판 없는 식당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나에게는 마라톤이라는 운동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계기였다.


하루를 뛰었다면, 이틀은 걷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엘리트 선수들의 훈련정도로만 생각했던 달리기가 이제는 일상 깊숙이 침투한 듯하다. 작게는 동네 러닝 크루부터, 넓게는 지역별 마라톤 동호회까지 장소애 구애받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그러나 나는 여전히 동행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나약한 탓도 있겠지만 딱히 심심해 보이는 달리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달리기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할까?"




한국인들에게도 제법 알려져 있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기 위해서 1주일에 60km씩 달린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나도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 달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DNA는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달리기보다 걷기에 집중했다.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 하정우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걷는 사람'에서 말한다.

"걷기를 통해 머리가 복잡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그래서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내가 마라톤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걷기 또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하루에 10km는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슈퍼도 차로 다녀오거나 혹은 배달비를 더 주더라도 편의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얽혀 사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Walker Aholic'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을 때 일단 걷고 본다. 간혹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도 도보 10분 이내까지는 걸어서 다녀온다. (아니, 가지러 가면 배달 음식이 아니지 않나?)


뛰기도 좋고, 걷기도 좋은 곳 '방이'

어쩌면, 방이동을 선택한 '마지막 이유'는 '뛰기도 좋지만, 걷기도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회사와 가까운 곳.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 내에서 찾고 찾다가, 결국 밀리고 밀려서 찾아낸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이곳이었지만, 어느덧 이곳을 살아간 지 어느덧 1년 하고도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이곳에 살면서 연재도 시작하게 된 셈이니, 결과적으로는 "이사를 잘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면에는 내 주머니 사정과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주거 조건의 마지노선이 공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만, 이제는 나를 보통의 방이동 주민보다는 조금은 다른 무언가를 붙여보고 싶었다. 아니 이곳을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싶었다.

그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살고 있지!"라는 뻔한 대답보다, 또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서 선택한 수많은 동네 중에서도 하필 이곳을 선택하게 결정적인 된 이유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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