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한 그릇 더 주세요!
그날, 총 4그릇의 달팽이 수프를 주문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달팽이 수프로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전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본 달팽이는 어릴 적 친구들과 먹던 번데기와 흡사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번데기는 조금 텁텁한 반면 달팽이는 미끈거리면서 좀 더 쫄깃한 식감이었다. 어릴 적 꽤 귀한 식재료라고 들었지만, 이곳 모로코에서는 달팽이를 길거리 음식으로 파는 듯했다. 나 같은 가난한 여행객이 프랑스에서 고급 식재료로 불리는 달팽이를 다 먹게 될 줄이야.
어제는 반신반의했지만 오늘은 홀린 듯 같은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달팽이를 먹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어린 딸의 아빠가 자기 딸 좀 보라며 툭툭 치는 것이었다. 하긴, 내 눈에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관 속에 있는 달팽이를 어렵게 꺼내 먹는 모습이 이렇게 귀여운데 늦둥이 딸을 둔 아빠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을 것이다.
"기분 좀 좋으시라고 일부러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어린 딸은 그런 나에게 낯선 눈빛으로 외계인 보듯이 했지만, 아빠는 그 모습까지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곧이어 딸의 식사가 끝이 났고 그들은 일어났다. 나는 이제야 다시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리해서 한 그릇 더 시키기로 했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또 먹을 기회가 찾아올지 모를 텐데..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그릇을 한창 먹고 있는데, 또 누가 툭툭 건드린다. 이번에는 거리에서 휴지를 파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옆에 놓아둔 휴지를 가리키며, ("어제도 같은걸 사서 필요가 없어 ~ 얘들아"라는 표정을 지은 후에) 다시 먹으려는 찰나. 한 아이가 입을 벌리며 하나만 달라는 손짓을 하였다. 결국, 미안한 마음에 하나를 입에 넣어주고, 다른 아이도 줄려고 하는데, 갓 태어난 냥이들의 생존 본능처럼 서로 먹겠다고 밀치고 난리가 나기 직전에 옆에 앉혀서 한 그릇씩 시켜줬다.
실은 한 그릇만 시켰는데, '사장님이 한 그릇씩 주셨.. 다' 어쩌면, 그는 탁월한 사업가이신 듯.
내게 고맙다는 말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배가 고팠구나 싶었다.
"문득, 내게도 저런 적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적이었다. 외할머니는 배고픈 나와 동생을 위해 급한 대로 김에 밥과 신김치를 잘게 잘라 넣고 꼬마 김밥을 말아주셨다. 김과 밥 신김치가 전부였지만, 나와 동생은 만들어주는 즉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외할머니는 힘드실 법도 하셨지만 손주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에 꽤나 흐뭇해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 올랐다.
가난한 여행객에게 계획에 없는 지출은 늘 힘이 들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 내가 사 준 달팽이 수프 한 그릇이 시간이 지나도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그 값어치는 하고도 남은 듯하다. 이들의 삶을 불과 몇분 전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한 아이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오늘 하루라도 배고픔을 덜어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그 순간 행복했다면, 나는 돈을 쓴 게 아니라 '삶의 가치를 나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음날 나는 머나먼 곳으로 떠날 것이고, 아이들은 원점에서 또 하루를 시작하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모른 척했더라면, 평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기억 하나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찰나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잔잔한 미소가 묻어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깟, 달팽이 수프 한 그릇에, 너무나 많은 추억의 조각들이 담겨 있다. 그것도 여전히 따뜻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