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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동,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사라졌다.

원장님과 실장님 사이.

by 타이완짹슨

이사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먼저는 솜씨 좋은 식당이나 반찬 가게를 알아내는 것이고, 기왕이면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세탁소와 단골을 맺고, 일상이 지쳤을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 같은 카페를 찾아내는 것. 가끔은 진한 원두의 향을 풍기는 로스터리 카페의 발견은 치열한 서울 살이에서 잠시나마 살아가는 이유를 더해 준다.


운이 좋게도 방이동에는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있었다. 집에서 1분만 걸어 나오면 시끌벅적한 방이 전통 시장이, 골목 한 번만 돌면 만화책에서 본 듯한 푸근한 표정의 할아버지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세탁소 간판. 그리고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날 감성이 터지다 못해 사약을 마셔도 맛있을 것 같은, 2층 구옥 건물을 개조한 아늑한 로스터리 카페까지. 이 소소한 삶의 조각들이 낯선 서울 생활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들이다.

솜씨 좋은 식당에서는 입이 즐겁고, 친절한 세탁소에서는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는 쌓였던 피로가 날아가기도 전에 녹아버린다.

물론 여기까지는 필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저 치열한 서울 생활에 작은 위로가 되는 조력자 역할일 뿐. 스스로 풀 수 없는 숙제. 그건 다름 아닌 미용실이다.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나)


특히, 나처럼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상남자에게 미용실은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하기에 어쩌면 맛집보다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식당이야 맛없으면 다음날 안 가면 그만이지만

헤어 스타일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꺼벙하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치킨집만큼 많은 것이 미용실이라고 했던가?" 때로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도 힘들 때가 있다.

<집을 주변으로 미용실을 검색하니 수십곳이 검색 된다>

그래서 '미용실 수배 원칙'을 먼저 세우기로 했다.

제1원칙, 집에서 멀지 않아야 할 것

제2원칙, 너무 저렴하다고 선호하지도 말 돼, 너무 비싸다고 믿지도 말 것. "딱, 중간 지점을 찾아라"

일단 아무리 좋은 미용실이라고 할지라도 거리가 멀수록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결정한 곳은 집에서 불과 2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첫 번째 미용실' 사장님은 베트남 사람.

어디선가 유럽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손이 작은 아시아 사람들이 손재주도 좋고 머리를 잘 깎는다고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섬세할 것 같은? 베트남 사장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검증은 부딪혀봐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약 없이 방문했다가 곧바로 입구 컷을 당하고, 재방문 끝에 첫 번째 미션에 성공했다. "숯 좀 쳐 주세요"라는 말도 잘 이해하셔서 믿고 와도 될 것 같았다.

가격은 15,000원. 서울에서 사 먹는 삼겹살 1인분보다 저렴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묘하게 어색했다. 특히 3일 정도가 지났을 때 점점 군인스러운 느낌. 줄여서.. 군내? 암튼, 군인이 아닌 '상남자? 느낌의 세련된 느낌'을 살리고 싶었기에, 아쉽지만 베트남 사장님의 가게는 두 번째 방문을 끝으로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만족감과 불만족 사이.
실은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

남자에게 미용실은 직관적인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한 마디로 이유 없이도 나와 잘 맞는 곳이거나, 고급지고 비싼 곳이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안 들거나. 중 하나다. 새로운 미용실 수배는 생각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언제 찾아올지 모를 소개팅을 위해서라도 나와 맞는 미용실을 빨리 찾는 것은 중요했다.

최악에는 어색한 가발을 쓴 것 같은 기분으로 며칠을 버틸 각오로 말이다.

그렇게 또다시 내 눈에 들어온 곳! 네이버 지도를 보니 대표 원장님과 실장님 중 디자이너의 선택이 가능했다. 왠지 모를 믿음이 느껴졌다.


두 번째 미용실, 나의 가위손

멜빵바지를 입고 나를 맞이해 주시는 원장님의 첫인상은 조금 불안했다. 게다가 무미건조한 질문과 투박한 가위질. 그러나 결과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결과물이 나왔다. 이에 재방문은 당연했고, 세 번째부터는 부연 설명도 필요 없었다.

"샴푸 할게요. 다 되셨어요. 감사합니다."
대화는 이 세 마디면 충분했다.

그렇게 1년 넘게 별 탈 없이 잘 다니던 중. 하루는 미용실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아니, 이전하신다니!' 그것도 근처도 아니고 조금 멀리 말이다. 결국, 나는 또 원점에서 세 번째 미용실을 찾아야 했다.


세 번째 미용실 'ㅅㅂ'

상호명을 그대로 노출하면 문제? 가 될 것 같아서 약어를 사용했는데, 혹시 ㅅㅂ를 욕으로 읽었다면..? 나는 당신의 그 본능을 존중한다. 하지만 상호명이 당신이 자연스럽게 읽었던 그 욕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늦은 시간까지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이 꽤나 기억에 남아서였다. 늦은 시간, 환한 내부를 보니 왠지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총세분의 디자이너분이 계셨는데, 공교롭게도 당장 예약 가능했던 한분이, 현재 나의 새로운 가위손 아니 금손이 되셨다. 가격은 25,000원. 새로운 미용실을 찾을 때마다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는 있지만 동시에 만족감 또한 올라가니 크게 불만은 없다. 때로는 돈보다 큰 가치들이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 동네에서 소소하게 경험하곤 한다. 내게는 동네 맛집, 친절한 세탁소와 편의점 그리고 실력과 감성으로 나를 매료시킨 로스터리 카페와 세 번째 미용실이 그럴 것이다. 월세 75만원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들이 한 동네에 모여들었다.

마지막으로 동네라는 곳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이따금 변화의 미풍이 불어들 때, 당황하지 않고 나아가는 법 또한 이 동네에서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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