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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힘이 쎄다, 비유로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자

상대에게 설명하는 언어

by 갓기획

사실 나는 친구에게 은인이나 다름없다. 서른다섯 살까지 변변찮은 연애 한번 못해본 친구에게 나는 헌신적으로 소개팅을 제공했다. 어림잡아 30번은 해준 듯 싶고, 그 노력 끝에 친구는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30번의 소개팅을 해주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친구에게 소개팅을 해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

“나는 그냥 착하면 돼”


첫 시도는 불발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다. 세상 착한 여자들을 다 소개해 줬는데 친구의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망할 놈이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것이지, 백 퍼센트 내숭이었다. 다음 소개팅부터는 하나씩 요구 조건을 추가해 온다. 종교는 어쩌고저쩌고, 직업은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아졌다. 소개팅 회수가 20번을 넘어갈 때쯤에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외모에 대한 요구 조건까지 제시한다.


“나는 일단 머리가 길고, 약간 통통하며, 얼굴은 동글동글하게 생겼고, 보조개가 있었으면 좋겠어. 성격은 밝고 명랑하고, 예의도 바르고. 아 맞다. 애교도 있으면 좋겠네”


‘그런 여자가 널 왜 만나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어디까지나 이상형이기에 참고 넘어간다. 모호한 요청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낫다 싶기도 하다. 친구의 설명이 꽤 구체적이라 대충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딱 이거다’ 하고 한 번에 감이 오지 않는다. 게다가 들을 때는 알겠는데, 돌아서면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정확하게 30번째 소개팅을 주선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번 친구의 지리한 설명이 이어지기에, 내가 딱 끊고 말했다.


“야 그럼 뭐야. 한마디로 홍진영 같은 스타일이네”

“그치. 딱 그거지.”


그렇게 성사된 소개팅은 성공적이었고, 친구는 자기 눈에만 홍진영 같이 보이는 여자를 만나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단언컨대 친구가 처음부터 이상형을 ‘홍진영 같은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좀 더 빠르게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서 결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친구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정보에 새로운 정보를 빗대어 표현하는 비유 능력이 있었다면,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친구의 요구사항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뇌구조가 다르다. 같은 정보가 유입되어도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특히 얼굴이 ‘동글동글 하다’의 정도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머리가 긴 정도’는 도대체 어디부터 길다고 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 정보를 그대로 꺼내서 상대방의 뇌에 보여주고 싶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림 그리듯이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장 위대한 일은 비유의 대가가 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비유는 쉽게 말해,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대상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의 댄싱퀸 김완선 씨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한국의 마돈나’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팝스타 마돈나에 빗대어 김완선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아 김완선 씨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댄스가수구나’가 한 번에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성수동에 자리 잡은 ‘블루보틀 커피’을 말할 때, 사람들은 ‘커피 업계의 애플’이라고 말한다. 블루보틀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IT업계에서 애플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충 어떤 커피 전문점인지 딱 하고 느낌이 오는 것이다.


이처럼 비유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나, 설명하려고 하는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뇌에는 이미 축적되어 있는 지식과 경험이 있고, 새로운 정보가 유입이 될 때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개념에 빗대어 표현하면 이해력을 높이고 비교적 쉽게 설명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뇌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미 시각적인 정보로 저장되어 있는 기존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연결시켜 설명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의미 전달이 쉽기도 하지만, 왠지 좀 더 재미있고 재치 있게 말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친구나 지인과의 대화에서,


“야 어제 술 많이 먹었지? 해장하러 가야지. 내가 죽이는 해장국집 알아 놨다. 진짜 좋은 재료가 다 들어가서 제대로 해장할 수 있는 집이야. 한 마디로 해장국계의 에르메스라고 할 수 있지”


'해장국이 해장국이지, 해장국에도 명품이 있나'라고 딴지를 걸고 싶다가도, 왠지 웃음이 나고 농담으로 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 위장에 명품 한번 감아 보자. 고고씽~~”


출산의 고통에 대해 전혀 감이 없는 남자들에게 출산의 경험을 표현할 때, ‘진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라고 말하면 왠지 와 닿지 않는데, '한라산 종주하고 내려와서, 차에 치인 기분이야’라고 말하면 그 고통의 정도가 좀 더 쉽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와 닿지는 않을까?


40대가 된 요즘, 부쩍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단골 미용실에서 디자이너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놨다.


"선생님 저 요즘 왜 이렇게 머리가 빠지죠?"


"쉽게 말해 두피는 땅이고, 머리카락은 벼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땅이 건강해야, 좋은 쌀이 나오겠죠. 땅이 너무 건조하거나, 습기가 차면 문제가 됩니다. 두피도 마찬가지예요. 관리하셔야 합니다. 자기 전에 머리는 꼭 말리셔야 하고, 멀리 말리실 때 가급적 시원한 바람으로 말리는 게 좋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두피관리 서비스를 신청하고 추가 비용을 내고 나와야 했다. 그 서비스의 효과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너무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해준 선생님에 대한 비용으로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가진 힘이나 효과를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유적인 표현을 쓰면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좀 더 쉽고 명확하게, 한 마디로 그림 그리듯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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