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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Feb 15. 2021

나는 내 선택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얼마 전, 어느 식당에서 재미있는 경험 하나를 했다. 방역 지침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일제히 출입 명부 작성 하는데, 이게 꽤 흥미로웠다. 출입명부를 가장 먼저 작성한 사람이,


‘000 외 2人’


이라고 써놓으니까, 그 밑으로 줄줄이 모두 ‘00 人’이라고 쓴 것이다. '2인', '3명' 등 다양한 표현이 있는데, 앞사람이 쓴 내용에 영향을 받아서 두 동일한 표현을 썼다. 예전에도 출입 명부 전화번호 칸에, 제일 먼저 쓴 사람이 010을 생략하고 8282-1212이라고 써놓니까, 다른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역시 재미있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내 선택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판단 기준이 분명 한 경우, 암묵적으로 다수가 선택한 가치를 인정하며  합류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동조 현상'이라 하는데, 이는 비단 출입 명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는 행태의 한 단면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일상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나 책, 웹툰 등 을 르기 전에  리뷰를 확인하고 선택며,  음식점을 가더라도 검색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음식점 문을 고 들어간다. 롱 패딩을 돌돌 말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하나 사야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람들은 그렇게 사회에 동조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동조하며 자신의 선택을 맞춰나간다.

 

이런 동조 현상과 관련해서, 아주 오래전 미있는 실험 하나가 진행되었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가 진행했던 동조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애쉬는 위 그림과 같이 하나의 선이 그려져 있는 1번 카드를 보여준 후, 길이가 다른 선분 3개가 그려진 2번 카드를 실험 참여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때, 2번 카드에 그려진 선분 3개 중에 C가 1번 카드의 선분 길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조작된 6명의 실험 도우미들이 차례로 B를 오답으로 말하도록 설정하고, 진짜 실험 대상자는 맨 나중에 답을 말하도록 했다. 몇 차례의 실험 결과 약 75%가 다른 6명의 오답에 동조 반응을 보이며, B를 정답으로 선택했다. 4명 중 3명은 보이지 않는 집단의 영향을 받아 명백하게 옳은 선택을 포기하고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류 회피 성향'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편에 기대어 오류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틀렸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가장 좌절한다. 그래서, '나는 틀리지 않다','나는 옳다' 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는 지도 모른다. 이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이다. 대적으로 다수의 선택이 옳은 경우가 고, 안전하검증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면 선택적 판단에 필요한 뇌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선택에 대한 불안감줄어든다. 다수의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만 그런게 아닌데 뭘’이라는 심리적 위안을 챙길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 의견이나 인생을 참고하고, 불확실함을 해소하며 삶을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도움을 얻. 


하지만,  늘 남이 하 대로 남들의 의견대로 행동하다 보면 고유의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생각 주관을  잃어버리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선택의 순간 ,검색에 의지하고 타인의 선택에 편승며 그렇게 우리는 '진짜 나'를 잃어가는 지도 모른다.  선택의 자유를 갈구 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선택에 종속되는 선택의 패러덕스 심심찮게 벌어진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선택 과잉 사회이다.  TV 채널을 고르거나 음식 메뉴를 정하는 소소한 선택부터, 여행지를 정하고, 배우자를 결정하는 등 인생의 모든 순간에 선택이 있다. 선택지는 너무 많고 사람들의 의견 또한 분분하다. 복잡한 선택의 상황 앞에 골치가 아프다. 때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선택을 뒤로 둔채 대세에 편승하거나, 실패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따른다.


물론 선택에는 실패라는 리스크가 따르고, 실패에는 좌절과 비난이 수반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얻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선택도 연습이고 경험이다. 아무리 사소한 선택이라도 그 순간을 회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선택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채 평생 남의 생각과 의견만 좇다가 끝날 수도 있다. 성장의 기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삶을 만들어 가는데, 남의 선택에 의지한  삶의 끝에는 후회와 공허함만이 남지는 않을까?'


선택과 책임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내 생각과 행동에 대자신감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원하는 것을 먹고,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어느 여유로운 주말 저녁, 가족이 모여 함께 볼 영화를 고른다. 모처럼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평점을 검색하고, 리뷰를 확인한다. 그 시간이 벌써 30분이다. 참다 못한 초  딸아이가 한 마디 해온다.


"아빠!!! 그냥 아빠가 보고 싶은 거 봐. 다른 사람들이 아빠랑 같아? "


그 말을 듣는 순간, 앞에 있는 놈이 뛰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뛰기 시작하는 스프링복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싸가지 없는 딸년, 아빠보다 낫네’라는 생각과 함께, 평소 보고 싶었지만 평점이 좋지 않아서 선택하지 않았던 영화를 다. 사람들 평가에 따르면 세상 재미없다던  그 영화가 끝나고, 나는 평점 10점 만점에 9.5를 줬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믿지 않고, 온전히 내 선택에 의존한 결과 정말 유쾌하고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맛볼 수 있다. 그날 밤 그렇게 나는 온저히 내 선택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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